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교육부장관(국민의 정부)과 제19대 민선 서울시교육감을 지냈다. 중앙 교육행정과 지방 교육행정의 수장을 모두 경험한 교육행정가인 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는 교육학자이자 교육철학자이다. 인성이 아이들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으로 공부만 강요하는 교육 환경에 큰 경종을 울렸다. 또 공부와 아이들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행복교육론 등으로 억압적 학습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하여 전인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아이들이 저마다 가진 재주와 끼를 마음껏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7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 리스트, 그중 단독 저서만 수십 권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교육개혁 운동가이다. 초기 경실련 활동을 비롯해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민사회활동에 헌신해 왔다. 교육학자에 교육철학자, 그리고 교육행정가에 교육개혁 운동가이기도 한 그에게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포함해 우리 교육의 길을 물었다.
김병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시끄럽다. 어떻게 봐야 하나?
문용린: 전에 국정화 체제였을 때 우 편향이 강했다. 그래서 이를 좀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교과서 자유발행 체제의 일환인 검인정 체제로 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너무 좌 편향이다. 그러니 다시 국사교과서에 관해서만큼은 국가 책임발행제인 국정화를 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다.
김병준: '좌 편향'이 그 정도로 심한가?
문용린: 샅샅이 읽어 보았다. 심한 편이다. 다들 읽어 보아야 한다.
김병준: 이승만 대통령 부분 등, 현대사 부분도 문제가 되고 있다.
문용린: 초중고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것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 집안으로 치면 조상들의 삶을 가르쳐, 가문의 훌륭한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게 핵심적 목표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학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포함하는 교과서는 이런 취지에 어긋난다.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되어야 하는데, 국정화는 그런 방법 중의 하나이다.
김병준: 검인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집필자 선정과 검증 등의 과정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 아닌가?
문용린: 교육부가 좀 더 잘 관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칠 것 고치라고 해도 집필진 등이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을 내고, 그래서 법정 다툼이 일어나곤 했다. 또 보수적 시각의 교재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데모를 하는 등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김병준: 개인적으로 국정화에 반대다. 역사 인식을 획일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 편향' 교과서들이 90~100% 채택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다른 방향으로의 획일화이기 때문이다.
문용린: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그러나 그 자유를 남용하면 제재가 필요하다. 검인정 체제가 기본적으로는 옳다. 그런데 이를 틈타 너무 좌 편향되어 버렸다. 과거 국정화 시절의 우 편향과 다를 게 뭐냐. 이래서는 안 된다.
김병준: 걱정이다. 국정 전체가 볼모로 잡혀 있다.
문용린: 중요한 것은 국정화냐 검인정이냐가 아니다. 본질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균형 잡힌 역사관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느냐이다. 이렇게 해서 안 되면 저렇게, 저렇게 해서 안 되면 이렇게 해 보는 거다. 그러면서 균형이 잡혀갈 것이다. 너무 크게 볼 이유 없다. 정치권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김병준: 그래서 정치권이 문제라 한다. 문제만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를 무기로 삼아 상대를 공격하고 찌른다. 문제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본다.
문용린: 그래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다.
김병준: 너도나도 대학을 간다. 대학진학률이 80%를 향하고 있다. 이걸 정상적으로 봐야 하나?
문용린: 일반적으로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어가면 대학진학률은 떨어진다. 대학 안 가도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 같은 유교 문화권인 대만과 일본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다. 가계소득이 늘면서 대학진학 희망자가 늘어났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수도 줄어들었다.
김병준: 왜 그럴까?
문용린: 더 높고 더 좋은 학교를 나와야 더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결혼, 직장, 대인 관계 모두 학력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또 시험 봐서 대학 가고, 시험 봐서 취직하고 출세한다. 그러니 대학을 가야 한다. 그것도 곧장 가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학 입학생 30%가 직장 경험이 있다. 예컨대 선원 생활을 좀 한 뒤 선박 관련 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디 가서 경험 쌓고 하다가는 그냥 뒤처져 버린다.
김병준: 우리는 자신이 뭘 좋아하고, 또 뭘 잘하는지도 모른 채 대학을 간다.
문용린: 제각기 다 끼가 있고 재주가 있는데 이를 모두 죽이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만큼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김병준: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문용린: 기본적으로 투 트랙(two track)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6-3-3-4라는 학제를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트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걸 바꾸어야 한다. 즉 이런 학제 트랙 외에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트랙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빌 게이츠도 대학을 그만두고 마이크로 소프트를 일으켰지 않았나.
김병준: 결국 교육 외적 조건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즉 시장과 사회에서 뛰어난 기능인을 그만큼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용린: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하거나 선도해야 할 일이 많다. 멍석을 제대로 깔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능력인정 체제인 NCS(National Competence System)가 바로 그것이다.
김병준: NCS라 하면?
문용린: 학력과 능력(경력)을 상호 환산하는 공식적인 틀을 만들어 학력과 능력을 동등화시키자는 것이다. 일례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세계기능대회 수상자 등의 우수한 기능 인력에게 학사, 석사, 박사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졸의 세계기능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게 대졸자에 한해 주는 준교사 자격을 부여할 수가 있다. 이런 게 NCS의 핵심이다.
김병준: 예전 어느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칠 교수로 유명한 한학자를 모시기로 했는데 서당에 다닌 경력만 있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문용린: 뛰어난 연주자라 하더라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연주를 쉬거나 그만두고 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나 낭비적이냐. 훌륭한 용접공이 공고의 실기 교사가 될 수 있어야 하고 고졸의 뛰어난 유도 선수가 체육학과 교수도 될 수 있어야 한다.
김병준: 그렇게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이 넘치게 될 것 같다.
문용린: 부모들은 아이들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더욱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라 들볶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만큼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기 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김병준: 대학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대학 와서 학위 받겠다는 사람이 줄어들 테니.
문용린: 대학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사회적 인정을 받고 성공하는 길을 독점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의 학력 독점관리와 대학이 학사 석사 박사를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체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대학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의 독점이 너무 심하다.
김병준: 사실, 대학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다 가르치고 있지도 못하다.
문용린; 우리나라의 대학 전공과 직업 일치도가 60%밖에 안 된다. 대학이 사회경제적 수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학생도 자기 재주와 적성을 잘 모르고 진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준: 산학협력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용린: 다른 나라의 경우 산학협력이 고등학교와 전문학교 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지역 내 학교와 기업이 클러스터를 형성해서 서로 돕는다. 기업은 학교를 지원해 잘 가르치게 한 후 학생들이 졸업하면 바로 채용해서 현장에 투입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에 커다란 건물 지어 주고 교수연구비 지원하는 걸 산학협동으로 안다. 그러니 사람을 채용해도 6개월 이상 훈련시켜야 현장 투입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
김병준: 모두들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한다. 뭐가 정상화인가?
문용린: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믿고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게 정상화이다.
김병준: 초'중'고 사교육비가 18조원에 이른다.
문용린: 미국 같은 경우 부모들이 6-3-3-4의 학제를 믿는다. 즉 초중고에서는 그 단계에서 배울 것만 배우면 되고, 또 그 정도는 학교에서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외를 시키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 부모들은 학교교육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김병준: 왜 그렇게 되었나?
문용린: 앞서 말한 대로 학력으로 평가받는 세상, 시험 성적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라 그렇다. 성적 경쟁이 심하니 공부 잘하는 아이는 더 잘하기 위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는 따라가기 위해서 과외를 한다.
김병준: 학교가 아예 수월성 교육을 해 나가면 어떻게 되나? 평준화 폐지하고 우열반 편성하는 식으로.
문용린: 수월성 교육에 충실해도 즉, 학교가 아무리 잘 가르쳐도 평가 결과는 항상 정상분포를 이루게 된다.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초 학력 중심의 교육으로 가야 한다. 예컨대 영어는 이 정도면 된다는 식의 베이스라인을 정해 그 정도만 하고, 자신의 주특기를 연마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각자 지닌 재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공부가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우리 공교육이 갈 길이다.
김병준: 어려운 문제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세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결국 세상이 그런 쪽으로 움직여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문용린: 우리 교육은 거대한 항공모함이다. 그것도 가야 할 바른 방향도 추진력도 잃어버린 항공모함이다. 앞서 말한 투 트랙 시스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김병준: 그동안 이를 강하게 주장해 오셨는데 정부 안에서의 움직임은 어떤가?
문용린: 교육부 등 관련 부처의 문제의식이 약하다. 고용노동부 일인지 교육부 일인지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교육부는 학교 관리만, 고용노동부는 고용과 노동 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김병준: 비슷한 프로그램도 없나?
문용린: 고용노동부가 NCS라 하여 하고 있다. 그러나 제목만 NCS이지 능력과 학력의 동등화와는 아주 멀다. 친척도 못 된다.
김병준: 끝으로, 중앙 교육행정의 수장을 하셨고, 또 민선으로 지방 교육행정의 수장을 하셨다. 교육감 직선제는 어떻게 보시나?
문용린: 직선제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직선제로 하되, 지금처럼 따로 러닝메이트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동반자로 같이 출마하는 것이다. 물론 동반 당선 후에는 교육행정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병준: 귀한 말씀 감사하다. 특히 투 트랙 시스템에 관한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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