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해외방문에 나서는 대통령을 보면서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임기 중 최다 해외방문 기록될 朴 대통령

그 많은 방문길 중 뚜렷한 목표 있었나?

前 대통령들은 꼭 필요한 회의에만 참석

국가 발전 위해 절약한 박정희 떠올려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다가오는 총선에선 "진실한 사람만 선택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자회의 참석차 외국 순방 길에 오를 예정이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의 정치개입이란 비난을 살 만하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대통령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있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점에서 이 발언은 경솔하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의중을 전달할 수 있는데도 발언을 툭 던져놓고 외국 방문에 나서는 것이 박 대통령의 전형적인 패턴이 되고 말았다.

너무 잦은 대통령의 해외방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중 해외방문을 가장 많이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잦은 해외 나들이로 얼마나 국익을 도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금방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겠지만 그 많은 해외방문 중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나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대통령은 보다 당당하게 외국 방문길에 나설 수 있었으니 이 역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우리 국민 덕분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라의 대통령답게 미국과 유럽 등지를 당당하게 방문했다. 그런 노 대통령이었지만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여름에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환경정상회의는 물론이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가 좋지 않아서 대통령부터 근검절약을 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초에 시애틀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주최국인 미국은 김 대통령의 위치를 좋은 곳에 잡아주었으니 선진국을 향해 부상하는 우리의 국력이 반영된 셈이다. 대통령을 수행한 국내언론은 정상회담장에서의 김 대통령의 활약을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APEC이 추구했던 세계화 물결에 동참한 대가로 쌀 시장을 개방해야 했던 김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에 해외 방문을 꼭 필요한 경우만 했고, 오히려 자신의 숙원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해외 나들이를 아주 적게 한 대통령으론 박정희 대통령을 뽑아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5'16 후에 미국에 들러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고, 1963년 대선에 당선된 후 케네디가 암살되자 장례식에 참석한 정도다. 그런 박 대통령도 국군을 보낸 베트남을 방문했고, 하와이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 독일을 방문했는데, 독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 울창한 산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산림 가꾸기를 국민운동으로 추진한 계기는 독일 방문이었으니,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대통령의 외국 나들이였다.

박 대통령은 미국과 협력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 필수적임을 잘 알았지만 자신의 사상편력을 문제 삼았던 미국을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김현철 김동조 같은 노련한 거물 외교관을 주미대사로 기용해서 대미외교를 담당케 했다. 유신 후에 한국의 인권 문제가 비난을 받자 대학교수를 지내다가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발탁된 함병춘 씨를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공부해서 워싱턴 조야에 인맥이 탄탄했던 함병춘 씨를 주미대사로 기용한 대목에서 박 대통령의 용인술을 가늠해 보게 된다. 미국 또한 거물급 외교관인 필립 하비브를 주한미국대사로 서울에 보냈는데, 그는 도쿄에서 납치된 김대중 당시 야당 지도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가 좁아져서 각국 정상들이 모여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해외방문이 너무 잦다 보니 이를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해외방문도 아껴가면서 국가를 발전시켰던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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