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애처롭고 쓸쓸하다. 게다가 이 달력에 남은 날이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한 살 더 먹게 될 나이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서글프고 야속하다. 그렇다고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방도가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다만, 묵은해는 가지만 다가오는 새해는 올해와 다를 거라는 희망이 있다. 온 세상이 그 희망에 기대어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와 같은 마법의 단어에 홀려 들뜬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한 박자 쉬어봄직도 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 이웃 중 누군가는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겨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잠자리에서 이불을 걷어찰 흑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교사가 될 수도 혹은 '그나마 나는 다행이구나!'라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이번 주말은 우리 이웃의 사소함에 귀 기울인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이맘때면 쓰는 말인 망년회 또는 송년회. 두 단어 모두 연말에 하는 각종 모임에 붙이는 말이라 같은 말처럼 여겨지지만, 속내는 다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망년회는 일본어 잔재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그해의 괴로움을 잊자는 뜻에서 '잊을 망'(忘) 자를 썼다. 송년회는 '보낼 송'(送)을 써서 한 해를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동안 망년회보다 송년회가 더 빈번하게 쓰이는 추세이다. 일부 학자들은 언어가 우리네 삶, 사고를 지배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장이 맞는지, 그른지 이견이 있지만 결국 자주 쓰이는 말이 바뀜에 따라 세밑 풍경도 변했다. 과거에는 괴로움을 잊고자 술 마시고 취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파티에서부터 운동회 등 다양한 형태로 송년회가 변화하고 있다.
◆드레스 입고 시상식 가요
뭇 여성은 각종 영화제 영상에서 배우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는 걸 보노라면 부러움을 느낀다. 나보다 예쁜 것도 짜증(?)나는데 저렇게 예쁜 옷까지 입고 있으니 배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여성이 드레스라고는 평생에 한 번, 결혼식 때 입어보는 게 전부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축복받은 여성들이 있다. 연말마다 꿈같은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다. 앞서 말한 여성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대구웨딩연합회와 고구마웨딩은 22일 저녁 호텔 크리스탈에서 있을 송년회 '연합인의 밤'을 멋진 파티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치른다. 이 행사의 드레스 코드는 지난 2007년부터 이어오는 일종의 전통이다. 어디 이뿐이랴. 이날은 '직원들이 뽑은 최고의 관리자' '웨딩플래너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등 시상식도 준비돼 있다. 이날만큼은 영화제에 참석하는 배우들과 마음가짐이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래서인지 고구마웨딩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 150여 명이 한껏 멋을 내고 참석하는 이 자리는 매년 인기 만점이다. 이날을 위해 여직원들은 미리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찍어뒀다가 11월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한번은 송년회 때 드레스 입고 사진 찍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다음 송년회 때까지 17㎏가량 감량한 직원이 있을 정도다. 남자들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맵시 있는 턱시도 차림을 위한 뱃살 관리는 기본이다. 드레스 차림의 여직원을 위한 에스코트에 간택되고자 미리미리 피부도 관리하고 키높이 깔창도 준비해둔다.
다소 독특해 보이는 이 송년회는 '역지사지'에서 출발했다. 사실 직업이 웨딩플래너라고 하지만 모두 기혼인 건 아니다. 그렇기에 고객이 드레스를 입을 때 드레스숍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점이나 메이크업 과정의 고충을 다 아는 건 아니다. 기혼자라고 해도 자신이 딱 한 번 겪어본 일로 개별 숍마다 다를 수 있는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송년회를 통해 이를 경험하고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시작했다.
박경애 고구마웨딩 대표는 "이 형식의 송년회는 철저히 우리를 위한 시간이다. 자기 관리에 엉망인 사람이 고객을 빛나게 해주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송년회를 위해 직원들이 준비하는 모습이 스스로 관리하는 계기가 돼 그 자체로 의미 있다"며 "과음으로 인한 인사불성이나 반강제성 회식문화는 지양하고, 우리 직원들과 협력업체의 단합을 도모하고 그간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하는 데 이만한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플 올림픽 개최
유혜연(29) 씨는 이달 초부터 운동 삼매경에 빠졌다. 유 씨의 퇴근길 첫 코스는 집 가까이에 있는 탁구장이다. 탁구장에서 남자 친구와 만나 한참 땀을 흘리고는 다시 볼링장으로 향한다. 탁구야 평소에도 유 씨가 남자 친구와 즐기던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볼링은 유 씨에게 익숙지 않은 운동이라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연습한다. 이 모든 게 곧 있을 '커플 올림픽'을 대비한 특훈이다.
유 씨의 올해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년회 계획은 커플 올림픽이다. 아이디어는 이달 초 유 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매년 똑같이 차 마시고 밥 먹은 후 술 마시러 가는 게 따분하게 느껴졌다. 전혀 기대되지도 않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따뜻한 집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조용히 연말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남자들은 당구를 치면 진 쪽이 당구비를 낸다는 이야기에서 올해 송년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 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연말을 함께 보낸 대학 후배 둘에게 연락, "올해는 '커플 올림픽'으로 송년회를 하자! 탁구, 볼링, 포켓볼을 해서 각 경기 꼴찌 커플이 게임 비용을 내고 종합 꼴찌가 저녁도 사고. 어때?"라고 제안했다. 두 후배도 흔쾌히 응했다. 이들도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커플이 있어서 이들의 휴무일을 결전의 날로 잡았다. 성탄절 다음 날인 26일이다.
후배 커플들과 일정을 조율하느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대회의 세부 룰도 생겼다. 예를 든다면 탁구는 혼성 복식, 남성 단식, 여성 단식 등의 경기를 치르되, 혼성 복식 꼴찌 커플이 음료수를 사고 남성 단식 꼴찌 커플이 군것질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다 보니 유 씨 커플뿐만 아니라 다른 커플도 지지 않으려고 현재 종목별로 맹훈련 중이다.
유 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특별한 송년회 하나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 커플 모두 건강한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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