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이제이(以夷制夷)

중국 4대 미인(美人)은 호사가들이 술자리에서 만든 말이 아니다. 당나라 때 학자들이 경국지색(傾國之色)에 대해 논하다가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가 가장 뛰어나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 그 유래다.

이 미인들은 시인 묵객들의 영원한 소재거리가 되는데, 그중 가장 아련하고 애달프게 그려지는 이가 한나라 때의 왕소군(王昭君)이다. 궁녀였다가 화친을 위해 흉노족 왕에게 빼앗긴 미인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의 동방규는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황제가 쳐다보지도 않던, 하찮은 궁녀가 흉노족일망정 왕비로 신분 상승한 것은 중국판 '신데렐라'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 여기에 자신만을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는 중화주의의 본질이 숨어 있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한족(漢族)이 아니라면 아무리 특별해도 인간 이하의 오랑캐로 본다는 것이다.

청나라 초기에 편찬한 명사(明史)에는 이민족 거주 지역을 중국 내지에 있는 '토사'(土司), 외곽에 있는 '번부'(藩部)로 구분했다. 조선을 두고는 '번부 또는 속국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중국인이 보기에는 조선은 중국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동이족(東夷族)에 지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에게 은인으로 알려진 국민당 총통 장제스(蔣介石)가 2차대전 종전 후 오히려 한국을 속국으로 삼으려 획책했다는 점이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종전 후 한반도에 중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 고문을 파견해 중국의 영향하에 두려 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장제스 정부가 상해임시정부를 정식 망명정부로 승인하지 않은 것도 그런 속셈의 연장선상이다. 중국의 국부(國父)라 불리는 쑨원(孫文)도 1921년 한 연설에서 한국을 포함해 조공을 바치던 주변 국가들을 '우리네 잃어버린 영토'로 규정했다. 쑨원이나 장제스는 전형적인 중화주의적 팽창주의자였다.

중국의 통치 방식은 2천년 전 한나라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반도를 미국에 대항하는 전략적 울타리, 즉 '번부'로 보고,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로 한국과 북한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변방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북한의 핵실험 후 중국에 대해 '속았다' '배신당했다'고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은 정말 중국을 모르고 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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