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조진웅, 단역에서 존재감 '甲'으로

185㎝ 덩치, 어깨 힘 빼고 화면 접수…'병풍'역할서 꿈 키워 마침내 관객 저격

연기의 세계에서 '존재감 있는 배우'로 자리 잡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잘난 외모를 타고나야 하고, 또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외모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또, 무엇보다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춰야 한다. '존재감 있는 배우'에서 '성공한 배우'로 거듭나려면, 앞서 거론한 부분들에 '운'을 더해야만 한다. '노력'은 필수 옵션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하나둘 맞춰나가다 보면 조금 일찍 선두로 올라서는 이가 있고, 소위 '대기만성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상위 멤버에 합류하는 이도 있다. 배우 조진웅은 후자다. 단역부터 시작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tvN 금토 드라마 '시그널'에서 화면을 압도하고 있는 배우 조진웅의 매력을 살펴봤다.

★185㎝ 덩치, 어깨 힘 빼고 화면 접수!

힘 줄 때, 힘 뺄 때의 감정선 조절

상대와 호흡에서 튀지 않는 흐름

김혜수에 밀리지 않는 매력 뽐내

◆'시그널', 첫 주연 드라마 넘치는 존재감

'시그널'의 캐스팅 명단은 발표 당시부터 큰 화제였다. 김혜수-조진웅-이제훈 등 비지상파 드라마 출연이 처음인 인기 배우들로 구성돼 시선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당연히 김혜수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더니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필자의 주변에서는 조진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조진웅이 나오니 드라마가 영화처럼 보인다' 등의 호평이었고 예고편을 보고 나니 그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캐스팅에 자신감이 넘쳤던 '시그널' 제작진이 초반 예고편에서 주연배우 3인의 상반신 클로즈업을 주로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기려 애썼는데, 여기에서 단연 돋보인 건 조진웅이었다. 그동안 톱스타급 여배우의 상대역을 맡은 적이 없어 김혜수와 나란히 섰을 때 혹 밀리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기우일 뿐이었다. 오히려 섬광이라도 뿜어낼 듯한 눈빛으로 화면을 압도하며 무언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필자는 구구절절 떠들지 않고도 표정과 눈빛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배우, 그래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배우만이 한 편의 작품을 책임지는 주연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곤 했다. '시그널' 예고편에서 본 조진웅이 바로 '주연감으로 손색이 없는 배우'였다.

예상에 어긋남은 없었다. '시그널' 본편에서 조진웅은 어수룩한 신참 순경 시절을 거쳐 열혈형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사건 앞에서 냉철하면서도 여자 앞에서는 순박한 청년으로 돌변하는 모습 등 한 인물의 변화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냈다. 김혜수-이제훈과 매치되는 신에서도 상대와 연기호흡을 고려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때로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 중 자신의 일방적인 리드로 상대배우의 연기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따라오는 배우의 끈기와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자칫 리드하는 배우의 능력만 도드라질 뿐 극 전체의 밸런스는 깨지기도 한다. 반면, 조진웅은 상대 배우와 대면하는 신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상대와 자연스레 합을 주고받으며 전체 신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185㎝의 큰 키에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덩치와 표정 등 외모만으로 충분히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터라 연기에 지나치게 힘을 실었다가는 '과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조진웅은 이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실제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후 초기에는 외모에 걸맞게 와일드하고 남성적인 캐릭터를 꽤나 많이 연기했던 게 사실이다. 조진웅의 입장에선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을 것이고, 그래서 강한 남성의 이미지에 반하는 생활형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컸을 터. 그렇게 양쪽을 오가는 과정에서 조진웅은 '힘을 줘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 이에 더해 '힘을 실으면서도 힘을 뺀 듯 보여지는 법'을 익힌 듯하다. 지금 '시그널'에서 보여주는 조진웅의 연기가 딱 그렇다. 강점을 살리되 적당선을 지키고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다. 상대와의 호흡에서 튀지 않고 흐름을 살리는 데 신경을 기울인다. 이렇게 살려낸 캐릭터는 매력적이며, '매력적인 캐릭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드라마라는 매체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병풍'역할서 꿈 키워 마침내 관객 저격!

외모 탓 거친 남성역 많이 맡아

'솔약국집…'생활형 캐릭터 눈도장

영화 3편 잇단 개봉 '최고의 해'

◆쪘다 빠졌다 고무줄 몸무게

조진웅은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학과 재학시절부터 적극적인 무대 활동으로 연기력을 쌓았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맥베드' '바리데기' 등 다수 연극에 출연했는데 차분히 수업과 실전을 통해 쌓은 경험이 향후 성공의 기반이 됐다.

드라마와 영화 활동은 단역부터 시작했다. 대사 한마디 없는 길거리 행인 역할 등 주연배우의 뒤를 받쳐주는 이른바 '병풍' 역할을 하며 꿈을 키웠다. 그러다 영화에서 몇 마디 대사에 그나마 얼굴이 드러나는 조연 캐릭터를 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 개봉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일진 패거리 일원, 같은 해 공개된 영화 '우리 형'의 정신지체 장애인 두식 역 등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연기 좀 한다'는 말을 들은 후 차츰 영화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됐다.

하지만 이 시기 조진웅에게 돌아간 캐릭터는 폭력배나 형사 등 주로 덩치를 강조하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린 덕분에 드라마로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었다.

2007년 tvN '로맨스 헌터', 이듬해에도 OCN '과거를 묻지 마세요'에 출연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tvN과 OCN 드라마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던 시기라 조진웅 역시 안방극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조진웅은 2009년에 이르러 4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크게 성공한 KBS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브루터스 리를 연기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당시 조진웅은 재미교포로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졌으며 한국어까지 어눌한 인물의 특징을 잘 살려내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솔약국집 아들들'을 계기로 조진웅은 드라마와 영화에 쉴 새 없이 모습을 보이며 '연기 잘하는 조연배우'로 불리게 됐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스키점프 해설자로 등장해 웃음 포인트를 잡아주는 등 짧은 출연만으로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명품 조연' 대열에 합류했다. '베스트셀러' '글러브' '퍼펙트게임' 등 영화에서 연거푸 비중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히트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하정우-최민식과 맞붙는 상대 조직 보스를 맛깔 나게 표현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드라마에서도 비중은 차츰 커졌지만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게 쉽진 않았다. 그러다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을 만났으니 '솔약국집 아들들'의 제작진이 만든 KBS 주말극 '사랑을 믿어요'다. 조진웅은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자신을 눈여겨본 이재상 PD와 조정선 작가의 응원 속에 120㎏대의 몸무게를 약 30㎏ 이상 감량해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섬세한 로맨티스트를 연기했다. 이때부터 조진웅은 필요에 따라 체중을 늘렸다 줄였다 반복하며 '고무줄 몸무게 배우'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선 제일검 무휼을 연기해 상승세를 탔고, 영화 '끝까지 간다'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 인생에 제대로 방점을 찍었다. 조진웅이 데뷔 후 주요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공인된 시상식에서의 수상으로 '주연'과 '조연'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던 조진웅의 자리도 확실히 달라졌다. 올해도 조진웅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를 비롯해 안성기와 동반출연한 '사냥', 스릴러 '해빙' 등의 영화를 차례로 내놓을 예정이다. 드라마 '시그널'의 강한 여세를 몰아 2016년을 데뷔 후 최고의 해로 만들게 될 듯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