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일제시대에 예술인이 적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 말기에 이르는 동안에 태반이 훼절(毁節)하여 일제 주구(走狗)로 전락하였고, 진정한 예술인은 수효가 많지 않았던 것인데 향토 출신의 우수한 예술인들은 거개가 인품이 높고 지조(志操)가 굳어서 항일적 위치에서 민족예술가의 명예를 확보한 것이 특이하고 탁월한 점입니다."
3'1절 40주년을 앞둔 1959년 2월 25일 대구의 출판사 사조사(思潮社)는 작가 백기만이 주도해 만든 '씨뿌린 사람들'이라는 경북작고예술가평전을 펴냈다. 백기만은 '후기'에서 "일제시대 가시밭길을 걸으며 심혈을 기울여 문화창조에 고투하던 인물들 중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의 열전을 엮으려고 하였습니다"며 발간 이유를 꼽았다. "첫째 민족의 행로에 등불이 될 것이요, 둘째 민족예술사에 올바른 자료가 될 것이며, 셋째 민족의 공로자를 선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었다.
책 발간에는 고초도 커 1957년 3월 책을 내려는 뜻을 품고부터 2년이 걸렸다. 원고 마감에 1년을 기다렸고 비용 문제로 1958년 12월에야 인쇄에 들어갔다. 이렇게 태어난 '씨뿌린 사람들'에는 대구경북 출신 예술인 10명의 삶을 담았다. 소설가 현진건과 백신애,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 이육사, 오일도 그리고 음악가 박태원, 영화감독 김유영, 화가 이인성과 김용조다. 특히 이장희와 현진건은 1900년생 동갑, 이상화 1901년, 백기만은 1902년생으로 넷은 친구였다.
백기만은 44세로 가장 오래 산 현진건을 포함해 모두 요절했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조의 삶을 산 점을 높이 평하며 배경도 나름 밝혔다. 바로 '바람 앞의 가는 버들(風前細柳)이 아닌 크고 높은 산악(泰山峻岳)이라는 정평이 있는 경상도 성질의 굳은 심지(心志)'와 '신라 이래로 문물이 성하고 문사(文士)를 존숭하는 전통적 기질이 있기 때문에 문인 자신들도 자존심이 강하고 행동거지에 정중을 기하는 것으로 쉽게 변절하지 않는 특성'이다.
백기만은 이들을 기리는 기록을 남기는 것을 '숙명적인 과업'으로 봤다. 그러나 과연 그 과업은 그만의 것일까? 오늘을 사는 국민 모두 해야 할 일이다. 백기만이 꼽은 '경상도 성질'의 우리는 또 어떤가? 지금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는 일본군 강제연행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나를 잊으셨나요?'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3'1절 징검다리 연휴 나들이에 들뜬 후손을 꾸짖는 경구(警句)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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