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A(53·여)씨는 지난해 7월 인천의 한 요양병원을 다닌 지 1년여 만에 그만뒀다.
미처 쓰지 못한 유급휴가 수당을 요구하자 병원에선 "수당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내밀었다. 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퇴사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였다.
A씨는 7일 "퇴사하지 못하면 다른 병원에도 들어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7일분의 유급휴가 수당을 포기해야 했다"며 "이쪽 업계가 좁다 보니 다른 병원에 소문이 돌까봐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40대 후반의 한 간호조무사 B씨는 1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원하는 때에쉬어 본 적이 없다.
교대 근무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태를 관리하는 간호 부장이 임의대로 일정을 짜서 내려보냈기 때문이다.
B씨는 "병원이 지정해주는 날짜에만 유급휴가를 쓸 수 있는 형편"이라며 "간호조무사들이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간호조무사는 의원급 간호 인력 가운데 80%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기본적인 근로 조건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근로기준법 제60조를 보면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는 15일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
근무한 기간이 1년에 못 미치거나 1년 동안 80% 미만 출근한 근로자더라도 한 달을 개근하면 유급휴가가 하루씩 주어진다.
A씨는 2014년 6월 초부터 1년 넘는 기간 주 40시간씩 일해 유급휴가 15일을 쓸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오히려 수당 포기 각서를 써야 했다.
인천북부고용노동지청의 한 노무사는 "중도에 회사를 퇴사하게 되면 퇴사 시점에 유급휴가 수당 청구권이 발생한다"며 "유급휴가 수당 청구권이 발생하기 전에 수당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서가 무효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기준으로 병·의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수는 64만명을 넘어섰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1년 단위 계약을 맺어 일하는 경우가 많고 월 130∼140만원가량의 임금을 받는다.
의원급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들의 30% 정도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따진 월급 126만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에 따르면 의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2천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비율이 36.2%(758명)나 됐다.
연차 휴가를 받지 못한 경우는 66.9%(1천400명)에 달했다.
근로기준법 17조에 따르면 사측은 근로계약을 맺을 때 임금 항목, 지급 방법과근로시간, 연차유급휴가 등이 명시된 종이 계약서를 줘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간호조무사는 보통 1년 단위 계약직이 많아 휴가와 최저임금 등 근로 조건을 명시한 서면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간호조무사의 임금과 근로 조건 실태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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