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한 지붕 세 가족

"쏘는 벌레로서 어질고 착하기는 꿀벌 같은 것이 없는데 더구나 이 꿀벌은 딴 벌레와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꿀벌만은 꽃에서 떨어지는 가루와 풀잎에서 흘러내리는 이슬 따위의 쓸데없는 물건들만 모으게 되고…임금이란 벌은 위에서 하는 일 없이 편하고 신하 벌들은 밑에서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빛이 검게 생긴 벌이 늘 통 속에서만 있는 것은 이름을 상봉이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앞서간 숱한 관리와 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이익(1681∼1763)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수십년 동안 벌을 기른 경험을 바탕으로 양봉(養蜂)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성호사설'이란 문집에 남겼다. 나이 80세 무렵, 집안 조카들이 그의 평소 글을 모아 편집했으니 250여 년 전쯤이다. 그는 이미 '여왕벌'과 '수벌' 그리고 '일벌'이라는 서로 역할이 다른 세 종류의 벌로 이뤄진 꿀벌(蜜蜂) 세계, 즉 꿀벌의 '삼이성'(三異性) 구조를 정확히 살핀 셈이다. 여왕벌을 임금벌 즉 '왕벌'(蜂王), 수벌을 정승(재상)에 빗대 '상봉'(相蜂), 일벌을 '뭇벌'(群蜂) 또는 '신하벌'(蜂臣)로 부르는 등 용어만 오늘날과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에게 이처럼 한 마리 왕벌과 여러 마리 수벌, 수많은 일벌로 된 꿀벌 세계는 인간 세계와 다를 것 없었다. 이에 그가 꿀벌을 노래한 '임금벌'이란 긴 시도 짓고 다른 벌레와 다투지도 않고 해를 끼치지 않는, 벌꿀 생산을 위해 서로 맡은 역할에 충실한 '어질고 착한 꿀벌'을 자세히 기록해 전한 까닭이다. 그의 뛰어난 관찰처럼 꿀벌은 식물 생존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꽃꿀을 따는 꿀벌은 대신 꽃가루를 옮겨 식물 종자를 남기고 열매 맺게 하기 때문이다. 꿀벌로 식물의 종이 이어지는 셈이다.

지금 대구에서 바로 이런 꿀벌의 삼이성 공생 세계가 펼쳐지게 됐다. 13일 끝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다. 12곳 선거구에서 새누리당이 8석, 4곳은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이 나눠 가졌다. 20년 넘게 공고하게 유지된 특정당 독점 혹은 일당 편향의 정치 지형이 무너지고 여야 세 정파(政派)가 당분간 공존하게 됐다. 무소속 당선자가 다른 정당에 합류할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삼이성 꿀벌 세계처럼 대구의 한 지붕 벌통 속 세 정파의 공존이다. 서로 다르나 대구 발전이란 공통의 벌꿀 생산을 위해 대구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서 택한 새로운 해법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갈 12명 선량에게 대구를 위해 공존하도록 힘을 실어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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