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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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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이창무, 박미랑 지음/ 메디치 펴냄

막장드라마는 협박, 절도, 감금, 폭행, 살인 등 갖가지 범죄의 온상이다. SBS '아내의 유혹'(2008)부터 MBC '내딸 금사월'(2015~2016)까지(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극본을 같은 작가가 썼다), 시청자의 눈을 고정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미끼로 극 중 곳곳에 범죄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막장드라마가 잇따라 방영됐다. 그런데 보통 드라마는 한 다리 건너면 알 정도로 얽히고설킨 가족, 연인, 친구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남이 아닌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범죄를 저지르며 갈등을 빚어내는 것이 막장드라마의 특징이다.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런 막장드라마의 특징이 막장드라마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살인 피해자의 60%는 가족, 친구, 연인 등 지인에게 당한다. 특히 친족에게 당한 경우는 4명 중 1명이나 된다. 연쇄살인범 같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는 5건 중 1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한국 사회만의 얘기는 아니다. 덴마크도 친족(57%)에 의한 살인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이웃(20%)과 친구나 애인(12%)에 의해 많이 발생한다. 미국도 2014년 통계에 따르면 타인에 의한 살인은 1천381건으로 전체 살인 1만1천961건의 11.5%에 불과하다.

왜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이렇게 많이 죽일까. 책은 "살인은 '격정의 범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뿌리 깊은 증오가 살인을 일으키는데, 이런 분노와 증오는 평소 지인과 갈등을 빚으며 마음속에 쌓아두기 마련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분노와 증오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살인자가 '사이코패스'거나,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욱' 하는 마음에 살인을 저질렀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묻지마 살인'으로 표출했거나 등의 예외적인 경우는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드무니까 특이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이를 대중은 살인의 대체적인 경향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 부모가 자식을 죽인 소식이 여러 차례 알려지면서 가정폭력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2014)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7년 3개월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자녀 살해 사건은 230건이다. 매달 2.64건의 자식살해가 발생한 셈이다. 다행히(?) 부모에 의해 살해되지는 않았더라도, 부모에게 학대당하면서 큰 아이들은 학습효과에 따라 부모의 폭력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놓이게 된다. 폭력과 지배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학습한다. 가정폭력이 사회 속 다른 모든 폭력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초등학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으로 구속된 최모 씨는 "과거에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그 나름의 고백일 수도 비겁한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았다. 책 제목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에 대해 '먼저 우리가 그들을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살인자의 60%가 지인'이라는 사실 외에도 책은 범죄의 다양한 민얼굴을 살펴본다. 요즘 절도범은 내부에 있다. 2012년 미국 통계에 따르면 유통 손실 원인 1위가 내부 직원 절도(40.9%)였고, 외부인 절도(33.1%)가 2위, 행정 착오(15.3%)가 3위였다. 방화 사건의 40%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집이나 공장에 불을 지른 경우다. 강도가 든 가장 위험한 무기는 맨손이다. 강도가 칼을 든다면 위협용일 가능성이 높고, 강도를 당하는 사람도 쉽게 덤비지 못해 인명 피해가 날 위험이 적다. 하지만 강도가 맨손으로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하면 좀 달라진다. 몸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다칠 위험도 역시 많아진다.

여성 범죄자의 대중적 이미지는 도박꾼(도박)과 꽃뱀(간통)이다. 현실은 다르다. 지난해 국내 여성 범죄자 중 도박 범죄자는 4천604명이었고, 대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지금은 법적 효력을 잃은 간통 범죄자는 2013년 1천600여 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여성 범죄자가 가장 많이 저지른 범죄는 사기(4만9천147명)였고, 그다음이 폭행과 절도 순이었다. 사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사기죄를 참 많이 저지른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사기범죄 세계 1위 국가였다. 39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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