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수필: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우리 조상들은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겨왔다. 주방에서 나오는 허드렛물도 뜨거운 것은 마당에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마당 속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이 죽을까 봐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내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님도 그렇게 하시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집 주위에는 도둑고양이가 여러 마리 살고 있다.

단독주택이라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그런가 보다. 도회지 아파트 빌딩숲 속에서는 고양이가 살아가기 어려워, 야외의 수풀 속이나 단독주택 같은 데서 보금자리를 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이장희 시인은 고양이를 봄이라 노래하였다.

고양이는 호랑이과로 분류되는 육식성 동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사람이 죽게 되면 고양이가 나타난다는 속설이 있어 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비쳐진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우리와는 다르게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같이 보였다.

재작년에 1주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는데 상가마다 문 입구에 고양이 캐릭터가 붙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고양이는 재물 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같은 동양문화권일지라도 이렇게 생각이 다를 줄은 이제껏 미처 몰랐다.

엊그제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우물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옛날에 우물을 쓰던 자리에 창고를 짓고 거기에 여러 가지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우물을 완전 매립하면 운이 안 좋다기에 윗부분 전체를 메우지 않고 물을 빠지게 하는 조그만 구멍을 한 곳에 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벽 쪽으로 구멍도 하나를 뚫었고. 물론 지금은 우물에 물이 없어 말라 있는 상태다,

그런데 우연히 창고에 들어갈 일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바닥의 구멍 사이로 고양이 새끼 울음소리가 '야옹야옹' 들려오는 게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벽 쪽으로 난 옆 구멍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우왕좌왕하며 안절부절못하였다. 우물 속에 갇혀 있는 새끼 고양이는 연신 울어댔다. 살려달라고 나한테 꼭 애원이나 하듯이. '그러하마, 고양이야 내가 꼭 살려줄게'하고 생각했다. 공사 인부를 황급히 불러 창고바닥을 깨고 고양이를 간신히 구출하였다.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불행히도 그날 따라 창고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고양이 목숨은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고양이 목숨도 그렇게 천운으로 건진 게 아닌가.

수년 전에 우리 집 텃밭 쪽으로 기어가는 한 마리의 구렁이를 본 일이 있다. 구렁이는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고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한다. 그래서 그 구렁이가 우리 집에서 오래도록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다 같이 귀한 존재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예외일 순 없다. 태초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다 같은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다른 생명체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인간들은 다른 생명을 예사로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 이 어찌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오만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많은 생명들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고양이들은 우리 집을 삶의 근거지로 삼아 살아가고 있고, 그때 본 구렁이도 어디엔가 살아가고 있으리라.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모두가 다 같이 귀한 존재인 것을.

박운현(청도군 청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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