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1980, 90년대까지 외국잡지를 파는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서점에 진열된 잡지 중 단연 인기를 끈 것은 영화잡지 '로드쇼'라든가 패션잡지 '논노'와 같은 일본 대중잡지였다. 그 잡지들은 한번 잡기만 하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사고 싶어질 정도의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세대들로서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위해서 아주 달콤한 대안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저렴한 가격의 '과월호', 즉 '지난 호'이다.
일본 대중잡지와 관련된 이 경험은 1980, 90년대 한국의 젊은 세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1930년대 조선의 신세대 역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1938년 발표된 채만식의 '치숙'에 등장하는 10대 후반 주인공 소년은 일본 대중잡지 '킹구'(King)나 '쇼넨구라부'(少年俱樂部)의 애독자이다. '킹구'와 '쇼넨구라부'는 강담사에서 발행하여, 발행 직후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잡지들이다. '킹구'의 경우 100만 부가 팔렸으니 그 인기의 정도가 가늠될 것이다.(당시 조선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야담' 계통의 잡지가 한 달에 1만 부 팔렸다.)
비싼 가격의 '킹구' 잡지를 인쇄공 직업의 이 소년이 사보는 방법은 하나였다. 서점에 가서 지난 호를 반값에 구입하는 것이다. 철 지난 일본 잡지를 왜 굳이, 당시 조선에서 발행되고 있던 잡지와 같은 가격으로 구입했던 것일까. 소년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조선에 사는 소년까지도 포섭할 정도로 대중의 입맛을 절묘하게 포착한 '킹구' 잡지의 출현(1925)은 관동대지진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를 포함한 일본 관동지방에서 발생하여 사망자만 10만여 명이 넘어섰던 대지진이다. 재해의 와중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악성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3천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분노에 찬 일본인들에게 학살된 일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지진이 불러일으킨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모두가 자신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를 원했고, 힘든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환상일지언정 위로를 얻고 싶어 했다. 이 절실한 욕구는 '밥'이나 '집'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도쿄 내 7개 신문사 중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3개 신문사의 발행부수가 지진 발생 두 달 만에 제각각 30만 부에서 70만 부를 훌쩍 넘을 정도 급증했다. 변화는 신문 발행부수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절망을 잊기 위해서 야사(野史)를 다룬 흥미 위주의 소설이 성행하였고, 재미 중심으로 구성된 대중잡지가 등장하였다. 1930년대 조선 신세대들이 애독했던 일본 대중잡지 '킹구'는 바로 대지진의 절망 속에서 만들어진 잡지였다.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의 유명 작가 '기쿠치 칸'은 "생존절명의 경계에 맞닥뜨려보니, 문학이라는 것이 골동품처럼 쓸모없는 사치품에 불과한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쿠치 칸의 탄식과 달리, 그 절망 속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준 것은 결국 그 골동품 같은 문학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문학의 위기를 넘어 문학의 죽음이 심심치 않게 논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문학이 다시금 대중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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