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세계 책의 날을 보내며…

"이 세상에는 햄릿형의 인간이 존재하며, 이런 유형의 인간은 뛰어난 지각력과 (…) 깊은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 햄릿형의 인간은 이 세상과 민중에 대하여 기여하는 바가 하나도 없으며, 실천력의 결여로 인해 비난을 받습니다. 반면 절반쯤 광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형의 인간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며 (…) 그런 까닭에 이 유형의 인물만이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하여, 민중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1860)라는 유명한 강연에서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을 구분했다. 대조되는 인간 전형으로 두고두고 언급되는 햄릿과 돈키호테를 남기고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 사망했다.

유네스코는 4월 23일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에서 본떠 세계 책의 날로 지정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의 낭만과 유쾌함이 느껴지는 날, 두 대문호의 죽음 의미까지 더해진 4월 23일은 전 세계가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세계 책의 날을 '책 드림 날'로 애칭하여 부른다. 책으로 행복한 마음을 전하는 책 선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부터 주도하고 있다. 주위의 가족, 친구, 선후배들에게 평소 감사의 마음을 책으로 선물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받을 이를 생각하며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 선물의 즐거움이 된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말처럼 향수 선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책 선물이다. 유네스코의 '책이 이해, 관용, 대화를 기초로 한 사람들의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책의 날 제정 취지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책이 가지는 상징성에 선물하는 사람의 손도 주저하게 된다. 간혹 상대방을 위한 책을 고르는 기쁨보다는 나의 독서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은 열등감이 더 신경 쓰일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이나 서점의 추천 도서에 발길이 더 많이 닿는다.

그렇다면 '셀프 선물'이라는 걸 하면 어떨까? 힐링이 필요한 나에게, 휴식이 필요한 나에게, 나를 위한 책을 선물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 어떤 책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공공도서관에서 빌려도 된다. 단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정성을 쏟아보자는 것이다.

책의 날은 인류의 지식을 보존해온 책의 중요성과 도서의 보급을 기념하는 것보다 책을 읽음에 더 큰 의미가 있겠다. '돈키호테'를 읽음으로써 이상주의자인 돈키호테가 현실세계와 충돌하며 그의 기사도 정신이 실패하고 패배했음에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꺾이지 않는 1600년대 세르반테스의 시대를 공감할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햄릿의 명대사를 다시 읽는다면 첫 느낌과는 다른 감동이 전해질까? 학창 시절에 읽었던 그 희곡집을 다시 꺼내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지난 주말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주위의 고마운 분들이나 가족, 친지 또는 스스로에게 '책 선물'을 하셨다면, 그 나름 보람된 주말을 보냈다고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잊어버리거나 잘 몰라 그럴 기회를 놓쳤다고 해도 크게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마음의 양식을 쌓거나, 각박하고 지친 일상에서 여유와 힐링을 찾을 수 있는 독서는 책의 날을 맞아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기념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책의 날을 보내며 이번 주를 '나만의' 또는 '우리의' 독서주간으로 기획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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