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리핀 "범죄와 빈곤서 탈출시킬 강력한 지도자 원한다"

"범죄와 빈곤에서 우리를 탈출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9일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된 필리핀의 투표소마다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께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발렌수엘라 지역에 있는 체육관은 이른 시간인데도 600여 명의 유권자로 가득 찼다.

이들은 바깥 온도 30℃보다 훨씬 높은 체육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한 표를 행사했다.

인근 제너럴피오델 공립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장에도 오전 6시 문을 열자마자 유권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구에서는 정'부통령, 상'하원 의원, 주지사, 지방의원 등 후보자가 200명을 넘고 20∼30명에게 기표를 해야 한다. 투표용지 길이만 53㎝에 이른다. 신원 확인부터 투표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유권자들이 이렇게 많은 후보자를 일일이 평가한 뒤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 때문인지 투표장 인근에서는 각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대통령 후보부터 지방의원 후보까지 소속 정당 후보들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모의 투표용지를 나눠줬다.

이 용지에 적힌 대로 투표하라는 것이다. 실제 투표장에서 이 용지를 보고 기표하는 유권자들이 눈에 띄었다.

투표소마다 선거관리 직원들이 투표를 마친 유권자의 손톱에 잘 지워지지 않는 파란색 잉크를 칠하는 모습이 보였다. 투표 확인 표시로, 이중 투표와 같은 부정선거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지지 후보는 달라도 변화에 대한 욕구는 차이가 없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여대생 선샤인(23)은 "대통령으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 시장을 찍었다"며 "그가 범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시장은 "피비린내 나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며 강력 범죄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필리핀에서 '범죄 및 부패와의 전쟁'을 약속했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교통 담당 공무원이라는 코르도비스 니뇨(40)는 대통령으로 두테르테 시장에게, 부통령으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에게 각각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를 소탕하고 필리핀을 발전시키는 데 이들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두테르테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법을 지키면서 범죄에 대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권 자유당(LP) 대선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에게 표를 던졌다는 어윈 세비리나(33)는 "그가 현 아키노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부패와 교통지옥 문제를 개선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 여성(66)은 "새 정부는 빈곤과 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며 "그러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표자를 표시하는 파란색 잉크가 칠해진 검지를 들어 보였다. 그녀는 강력범 처형 등 초법적인 범죄 소탕을 주장하는 두테르테 시장에게 반감을 보이면서 사회 불안과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온건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2015년 상반기 기준 필리핀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26.3%를 차지했으며 같은 기간 범죄는 88만5천여 건 발생해 전년 동기보다 46% 급증했다.

일부 지역에서 매표 행위가 있었다는 신고가 선관위에 들어오는 등 막판 금권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가운데 필리핀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지 국내외 시선이 집중돼 있다.

총선,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이번 3대 선거에서 정'부통령, 상원의원 12명, 하원의원 297명, 주지사 81명 등 총 1만8천여 명의 공직자와 의원을 선출한다.

유권자는 5천436만 명으로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신이 등록한 지역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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