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동체 회복의 디딤돌 '할매할배의 날']<1>경북도, 왜 할매할배의 날인가

밥상머리 교육의 힘…빌 게이츠·오바마도 조부모가 키웠다

2014년 10월 25일 할매할배의 날 선포식 장면. 이날 경북도는 경북도교육청과 공동으로 예천문화회관에서 각계 인사
2014년 10월 25일 할매할배의 날 선포식 장면. 이날 경북도는 경북도교육청과 공동으로 예천문화회관에서 각계 인사'3대가 함께 사는 가정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열었다. 경북도 제공

오늘 대한민국은 공동체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병폐의 원인은 공동체 붕괴에서 비롯됐다. 산업화를 거치며 공동체가 붕괴하고 핵가족화가 가속화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인성 왜곡과 황폐화를 불러왔다. 공동체의 기본인 가정이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도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엔 3대가 한집에 살았다.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안겨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며 자랐다. 산업화 이후 핵가족화는 조손 양 세대를 단절시켰다. 그 결과 밥상머리에서 이뤄졌던 인성교육도 설 자리를 잃었다.

경상북도는 2014년 10월 27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 '할매할배의 날'을 지정해 운영 중이다. 할매할배의 날은 단순한 노인정책이 아니다. 조손 간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를 손자 손녀에게 전하는 기회를 줘 잃어버린 정신적 뿌리를 되찾고 가족 공동체를 복원하는 게 목적이다. 경북도는 햇수로 2년째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할매할배의 날로 정해 멀리 사는 손자 손녀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조부모를 찾게 하고 있다.

◆할매할배의 날이란

"할아버지가 밖에 나갔을 때 날이 저물면 슬퍼하고 밤에 졸려도 자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늦게 돌아온다고 원망한다. 이것이 진정 더불어 사는 것, 한 뿌리 한 가지에서 나온 까닭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묵재 이문건이 쓴 '양아록'(養兒錄)의 한 대목이다. 양아록은 묵재 선생이 성주에 귀양와 손자인 숙길이 16세가 되는 해까지 키우며 쓴 일종의 육아일기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훈육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기록한 글로 할아버지의 손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기록돼 있다. 묵재의 손자 이수봉은 나중에 이 글을 읽고 마음을 바로잡아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할매할배의 날은 이 양아록을 근거로 출발했다.

경북도가 할매할배의 날을 제정, 운영하기 훨씬 전인 1978년 미국에서도 조부모의 날을 국경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날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학교로 초청해 꽃을 달아주고 손자녀 세대에게 조부모의 지식과 인생경험을 배우게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14개 나라가 이와 유사한 날을 지정해 놓고 있다. 자녀의 인성교육, 화목한 가족관계 형성에 조부모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도 조부모의 인성 교육을 받았다. 자선사업가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빌 게이츠에게 책을 읽어줘 독서광으로 만들었다. 또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함께한 게임과 카드놀이가 훗날 그의 지능 발달에 도움을 줬고, 하버드 대학 시절 포커놀이를 통해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할매할배의 손자녀 양육의 긍정적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역시 외조부모의 교육 아래 성장했다. 퀴리 부인의 시아버지가 손자녀를 교육했다. 아들 내외가 연구에 몰두하게 해 부부가 노벨물리학상을, 손녀 부부가 노벨화학상을 받는 밑거름이 됐다.

경북도가 도입한 할매할배의 날은 이처럼 조부모의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교육하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 어버이날(5월 8일), 노인의 날(10월 2일)과 달리 조손 세대가 함께 생활하며 정서를 교감하고 소통한다.

◆할매할배의 날 본격화

할매할배의 날은 2014년 10월 25일 '할매할배의 날 선포식'과 이튿날 '경상북도 할매할배의 날 조례' 제정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이어 경북도는 할매할배의 날 업무의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 담당 부서를 신설하고, 대구경북 7개 공공기관(대구시, 대구시의회, 대구시교육청, 대구경찰청, 경북도의회, 경북도교육청, 경북경찰청)과 공동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시작은 했지만 공휴일도, 전통이 있는 날도 아니다 보니 경북도는 먼저 할매할배의 날 홍보에 주력했다. 할매할배의 날에 대한 이해와 동참을 위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도민 인성교육,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밥상머리교육,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성 특별교육 등을 추진했다. 또 할매할배의 날을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어르신을 상대로 연간 20회 코믹연극, 부모 세대를 위한 오케스트라 공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인형극 공연, 3대가 함께 참여하는 TBC (손주)랑(할매할배)랑 콘서트 등 각계각층에 맞는 맞춤형 홍보를 했다.

홍보와 함께 할매할배의 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유인책도 펼쳤다. 경북도는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식당'이용실'미용실'목욕탕 등 4개 단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할매할배의 날에 조손 간 해당 시설을 이용할 때 20~3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할매할배의 날이면 경북 농산물 쇼핑몰인 '사이소'와 경북 중소기업 공동 브랜드인 실라리안에서도 타임 할인이나 매장할인 등의 방식으로 10~30% 할인을 해준다. 특히 매월 마지막 주 월~금요일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운행 중인 여객선을 3대가 함께 이용하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할매할배의 날에 휴양림, 도내 주요 관광지를 3대가 함께 가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그 결과 미약하지만 조금의 변화가 일어났다. 조부모에 대한 재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경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노희진(32) 씨는 "기존에는 학생들에게 가족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부모와 자기 세대 등 2대만 그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할매할배의 날을 통해 가족의 범위가 조부모까지 확장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할매할배의 날 제정 의미, 기념일 지정의 필요성, 실천방안 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우리 전통의 효 문화와 할매할배의 날을 연계해 발전시켜 나갈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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