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매년 4월 13일이 태국력으로 정월 초하루이며 새해를 맞이하는 축하행사를 벌인다. 이 기간에 서로 상대방에게 물을 뿌려 주는 전통이 있는데 바로 쏭크란 축제이다. 지난해 모든 악연과 잘못을 씻어내고 새로운 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물 축제로는 단연 세계 최고의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태국 전역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치앙마이, 방콕의 카오산 로드, 실롬, 왓프라카우, 파타야 등에서 벌이는 행사 규모가 크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가 본 나라가 태국인데 정작 쏭크란 축제 기간에는 한 번도 맞추질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찌감치 저가항공사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할 때 싼 금액으로 티케팅을 해 두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태국은 여행하기에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다양한 항공 노선, 많은 볼거리, 세계적인 음식들, 저렴한 숙소부터 고급 리조트까지, 오토바이부터 고급 리무진까지 다양한 교통수단, 화려한 밤 문화 등등.
올해는 태국에 가뭄이 심해서 쏭크란 축제를 취소 또는 행사를 대폭 줄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예년과 비슷하게 치른다고 했다. 사실 4월은 세계적으로 여행 비수기다. 근데 이 축제 기간만큼은 인기 있는 호텔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 구하기가 어려울 만큼 세계인들이 많이 찾는 축제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행사로 인해 유발되는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 같다. 그래서 재난이 닥친 경우가 아니면 이 행사는 계속 될 걸로 의심치 않는다.
4월 12일 밤 비행기로 도착한 방콕 수완나품 공항은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으로 분주하다. 그 틈을 비집고 공항서 도심을 이어주는 고속전철에 몸을 싣고 방콕 최고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스쿰빗 거리의 아속역 부근의 싸지만 깔끔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약간의 현금과 휴대전화를 젖지 않게 보호해줄 방수팩, 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안경을 구입, 쏭크란 축제행사를 시작하는 실롬 거리로 향했다. 아직 행사 시작 전이었지만 중무장(?)을 한 많은 사람이 물을 뿌려대며 환호를 지른다. 겨우 걸음마를 뗀 꼬마들과 손자까지 봤음직한 지긋한 연세를 가진 분들도 눈에 띈다.
필자도 남자라 병기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비록 장난감이긴 하나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병기는 처음이다. 실탄이 물이라 중간중간에 물을 팔기도 하며, 소방차나 관공서에서 지원한 듯한 대형 물차들이 실탄(?)을 공급하기도 한다. 축제를 알리는 신호와 함께 지상철의 고가도로 난간에서 아래로 난사하는 사람들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지 방송국들과 외국서 취재 온 취재진이 카메라를 방수포로 꽁꽁 묶은 채 열심히 취재를 하지만 '총알'을 피해 갈 순 없다. 돌아서서 렌즈를 닦으랴 촬영하랴 바쁘다. 실롬 거리를 벗어나 방콕서 쏭크란 열기가 가장 뜨겁다고 할 수 있는 거리인 카오산 로드로 갔다. 카오산 로드는 세계적인 배낭 여행자 거리로 유명하며,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장소다. 피크타임에 맞추어 간 때문인지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거대한 쓰나미에 끌려 움직이는 느낌이다. 필자도 한 축에 끼어 몸을 내던져 본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머리 높이 치켜든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들은 환호와 열정 그 자체이다. 목말을 태우고 공중을 향해 뿌려대는 물줄기며, 그것을 온몸으로 즐기려는 젊은 청춘들,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철저하게 지키는 매너, 어린 아이나 여성들을 배려해주는 모습들.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우리나라에는 이런 축제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우리나라 샤부샤부와 비슷한 수끼로 저녁을 때우고 방콕 최대 환락거리인 소이카우보이 거리로 갔다. 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인해 똑바로 정신 차리고 다니지 않으면 부딪히기 일쑤다. 토플리스 차림의 농염한 자태를 한 아가씨들과 얼핏 보면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레이디 보이(게이)들, 상의는 모두 벗은 채 적당하게 근육을 붙인 잘 생긴 청년들 여러 명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아마 여성 전용 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인 것 같다. 골목 거의 끝쪽에 위치한 바카라 클럽은 이곳에서 가장 큰 클럽으로 늘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입구서 입장료 명목으로 판매하는 맥주 한 병을 사들고 1층 한편에 엉덩이를 걸치고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의 무희들에게 시선을 돌려본다. 맥주를 다 비울 즈음 클럽을 나왔다. 평소 록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거리 입구에 있는 록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생음악으로 두드리는 시끄러운 메탈음에 맞추어 머리를 흔들어 본다. 종업원에게 부탁한 쪽지에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적고 100바트짜리 지폐 한 장에 싸서 밴드에 건네준다. 열기로 가득했던 태국 쏭크란 축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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