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으로 대구경북(TK) 시도민들은 TK 출신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배신당한 꼴이 됐다.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신공항을 이용해왔다. TK 시도민들은 정치권의 공약을 믿고 표를 몰아줬지만 정치권은 신공항 무산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매일신문과 TBC가 공동으로 대구에 사는 성인 남녀 1천200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4.5%가 '대통령 등 행정부'를 꼽았다. 다음으로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43.0%)을 들었다.
시민들은 첫 번째로 책임질 사람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이명박정부 때 백지화됐던 신공항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어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국토교통부를 통해 신공항 사업 재추진 방침을 공식화했다.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에 이 정부는 이명박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공항을 백지화할라치면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없이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이라고 강변했다. 더 나아가 "김해 신공항, 성공하도록 최선" "김해 신공항, 예산 절약하고 안전 문제도 해결"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영남권 주민들의 염원을 저버렸다. 박 대통령은 국토부가 김해공항을 관문 또는 허브공항으로 확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하에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게 된 걸 몰랐다는 말인가? 박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몰랐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유기이자 자질 부족이고, 알고도 김해공항 확장안을 밀어붙였다면 '밀양이냐, 가덕도냐"를 결정지으려고 한 신공항 용역 결과를 뒤집은 것이자 영남권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시민들은 두 번째로 TK 국회의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TK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TK 의원들은 늘 부산 의원들에 비해 한발 늦었다. 부산 정치권의 신공항 정치 쟁점화에도 정치적 개입 자제만을 촉구하며 용역 결과만 기다렸다.
부산의 유치 여론에 떠밀려 대구 국회의원들은 마지못해 한자리에 모여서 부산에 엄중 경고하는 성명서를 낭독한 것이 전부였다. 지난 1일 새누리당 부산 의원들이 정진석 원내대표를 찾아 가덕도 신공항 당위성을 설명하며 압박에 나섰지만 TK 의원들은 다음 날에야 정 원내대표를 찾아 항의의 뜻을 전했다. 또 정부 발표를 하루 앞둔 20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부산시민의 간절한 신공항 염원을 전달할 때도 TK 의원 중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의원 한 명 없었다.
신공항 백지화 이후 TK 중진 의원들의 대응도 무기력했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이 선정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반면 최경환 의원(경산)은 박근혜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며 신공항 논란 덮기에 나섰다. 시민들은 시'도지사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5개 시'도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며 유치 노력에 소극적이었다. 신공항 발표 이후에도 정부의 후속책을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이처럼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 정치인들 가운데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데 지역민들의 불만은 거세지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 이후 선거 때마다 신공항을 이용해온 현 정부와 정치권, 시'도지사를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을 지금 이대로 둘 순 없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공동 인식이다. 내년 대선과 내후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시'도민의 절박한 염원을 저버리고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와 지역 정치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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