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민정수석·언론사 주필이 주역
반전 거듭되는 너무 추한 막장 드라마
오만한 권력 싸움에 국민 끌어들인 셈
우 수석 비호할수록 대통령에 등 돌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는 없다. 이건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가슴 조이며 보는 '장희빈' 같은 궁중 드라마도 아니요, 4년 연속 에미상 작품상을 받은 '웨스트 윙' 같은 모범적인 정치 드라마도 아니다. 어느 드라마인들 갈등이 없겠는가? 갈등도 그럴만한 이유나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너무 추하다. 이 막장 드라마가 장희빈이나 웨스트 윙을 압도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온 국민이 어쩔 수 없이 보는, 권력의 이면을 들추는 드라마인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실세라는 민정수석, 그리고 여론을 주도한다는 언론사의 주필이 주인공인 까닭이다. 그뿐이랴. 민정수석을 감찰한 특별감찰관과 호위무사가 된 '친박' 국회의원,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고도 다 망해가는 조선소 사장은 당당한 조연이다. 여야 정당의 대표들, 차기 권력 주자들은 물론, 졸지에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을 수사하게 된 고검장도 조연 못지않은 배역이다. 그리고 배역의 크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마치 궁중 드라마가 반전을 거듭하면서 새 인물이 등장하듯이 말이다. 쉽게 말해 이 나라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은 어떤 역할이든 조금씩은 다 끼어든 흥미 만점의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신문사가 우병우 수석을 공격하자, 우 수석이 두어 차례 말을 바꾼 게 일을 키웠다. 세간에는 청와대 일개 비서의 부패를 두고 벌이는 단순한 공방이 아니라, 차기 대권 구도와 얽힌 파워게임이라는 풍설이 나돌았다. 대통령은 모든 언론의 손가락질을 받는 우 수석을 내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호했던 것이다. 어쨌든 우 수석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게 아니던가. 정강이라는 가족회사의 '절세' 의혹만으로도 그는 적어도 민정수석으로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 싸움의 빌미가 된 진경준은 물론 신임 경찰청장 검증에도 실패했다. 그래도 그는 버텼다. 그래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우 수석이 무너지면 사정 라인이 무너져 레임덕을 감당 못한다는 설부터 대통령의 비밀을 아는 그를 쉽게 쫓아낼 수 없을 거라는 소설 같은 얘기도 떠돌았다.
호사가들의 이런 입방정은 다분히 청와대가 자초한 것이다. 솔직히, 우 수석이 아니라 청와대를 흔드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 들렸을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는구나. 왕조시대에도 피혐(被嫌)을 당하면 사직상소를 올리는 게 선비의 법도였다. 설사 신문사가 불순한 의도로 공격했다 하더라도 명색이 민정수석인데 그만한 의혹이 따라붙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순리였다. 대통령도 일단은 그를 버려야 했다. 그다음 그 불순한 의도를 제대로 응징하면 그만이었다. 그랬으면 쉽게 조선일보의 패배라는 반전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러지 않았다. 곧 신문사 고위 간부의 비리를 덮기 위해 우 수석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는 '부패 기득권 언론에 굴복할 수 없다'고 역공의 칼을 내밀었다. 말하자면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에 온 국민을 관중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이건 참 어리석은 싸움이다. 싸움의 본질이 청와대 생각처럼 부패한 언론이 벌인 불순한 시비가 아니라, 오만한 권력과 대중의 싸움이 된 것이다. 송희영 전 주필이 비난받아 마땅할 호화로운 접대를 받은 게 사실이더라도, 그리고 대우조선 고위 임원의 연임을 청탁하다가 거절당하고 우 수석을 공격한 게 맞다 하더라도, 대중은 여기저기 '우병우 사단'을 만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우 수석의 편을 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를 비호하는 한 대중은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대중의 속성이요, 권력의 숙명이다. 대중은 어떤 경우든 심정적으로 권력의 반대편에 서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 이 추한 싸움의 한쪽 당사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약자의 잘못이 무엇이든, 대중의 눈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래서 권력자는 귀를 열어야 한다. 악의에 가득 찬 말들이 쏟아져도 틀린 질문이 아니라면 그에 응당한 답을 해야 한다. 권력의 성패(成敗)가 이로써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왜 이 싸움을 '대통령의 싸움'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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