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32년 이전에 국내의 적들이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법적 의무를 지키겠다는 우리의 맹세가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독일의 진정한 목표를 적군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1933년 프랑스 총리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프랑스 총리였어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새 독일 총리는 '나의 투쟁'을 썼다. 거기에는 이런저런 내용이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 주변에 둬서는 안 된다. 그가 스스로 사라지든지, 아니면 우리가 진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위험지대를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뒀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위험한 암초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항해를 마치고 그들보다 더 잘 무장한 뒤에서야 그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해 유럽에서 2차 대전이 본격화하기 4일 전인 1940년 4월 5일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엄격히 선별된 독일 기자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여기서 '적군'이란 1차 대전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1933년'은 나치가 집권한 해, '프랑스 총리'는 에두아르 달라디에, '새 독일 총리'는 히틀러이다.
이 말에서 '독일'을 북한, '적군'을 남한, '프랑스 총리'를 대한민국 대통령, 1933년을 미국이 영변 원자로를 폭격하려 했던 1994년, '새 독일 총리'를 김정일로 바꾸면 김정은의 어록(語錄)이 될 것이다. 그만큼 나치의 재무장과 북한의 핵무장 과정은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나치의 진정한 목표를 알지 못했듯이 남한 정부도 김씨 세습 왕조의 진정한 목표를 알지 못했다. 핵 개발 초기 단계에서 불가역적 비핵화를 겨냥한 승부수를 띄웠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이를 틈타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북한의 핵무장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런 현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고통스러운 양자택일뿐이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자면 김정은에게 자비를 구걸해야 한다. 비굴한 평화다. 이것이 싫다면 행동해야 한다. '현상 타파'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행동은 우환(憂患)의 발본(拔本)이어야 한다. 이는 근본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위험하지만 가치 있는 도박이다.
물론 제3의 길도 있다. 제재와 압박에 의한 핵 포기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뒷문을 열어둔 중국의 이중 플레이 때문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제재 역시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핵무장 카드도 있다. 그러자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해야 한다. 과거 파키스탄처럼 "온 국민이 풀뿌리를 캐먹는 한이 있어도"라는 결기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한 옵션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내건 사드 배치 반대론은 그 거울이다.
다시 원점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사실 이런 자문도 한가하기까지 하다. 미국이 '행동'을 실천에 옮길 준비를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과 관련해 백악관 대변인은 "선제 군사행동은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을 때 미국은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이 있다. 만물이 한계에 이르면 반드시 그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북핵 문제는 극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은 반이다. 핵 포기 아니면 외과 수술이다. 전자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졌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물론 그 실행 여부는 향후 정세 변화에 좌우될 것이다. 막상 실행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선택은 '김정은에게 자비를 구걸하며 비굴하게 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자문(自問)에 어떤 자답(自答)을 내느냐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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