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레임덕 심각한 중증 상태
미래 설계하고 계획 짤 참모는 없어
여당 대표 단식에 온갖 소문 떠돌아
'의혹 추궁 피하려는 잔꾀'로 의심
참 어수선한 나날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았는데 정부는 이미 힘을 잃고 있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미 레임덕은 시작됐다. 그것도 심각한 중증(重症)이다. 지난 총선 패배가 레임덕을 빨리 불렀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그전부터 스스로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야당에 숫자로 밀려서 그런 게 아니다. 소수 여당이라도 제1당으로서, 얼마든지 정국을 주도할 수 있고,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지금은 소수여서 아무것도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부정(否定)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박근혜정부의 실패와 때 이른 레임덕은 전적으로 박근혜정부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역량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시계를 돌려보면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프로그램은 엉성했다. 그나마 잘했다는 외교와 안보도 솔직히 불안 불안했다. 국정 여기저기서 일찍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복지 문제, 재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무상보육이나 노령연금 같은 복지 프로그램을 밀어붙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세부 설계는 참으로 아마추어였다. 정말 필요한 곳에 복지가 집중되지 못하니 30%가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돈 쓸 일은 많은데 증세라는 정공법을 피하다 보니 국가 부채만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러니 '재정절벽'을 만나게 되고 정부가 막상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게 돼버렸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개혁으로 135조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은 사실 신기루였던 것이다. 그 허상을 깰 기회는 분명히 있었지만 속절없이 지나갔다.
도대체 누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나? 황금 같은 임기 3년 반을 야당이 방해한 것만은 아니다. 임기 초반부터 야당이 대통령을 흔든 건 사실이다. 허니문은 애초에 없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흔들고, 선진화법으로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 탓을 해선 안 된다. 야당의 협조가 없는 모든 정부가 다 실패한다면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망조가 든 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이념체계로서, 헌법 조문대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꿔 말하면 대중이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한다면, 민주정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야당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대중을 설득하고 대중의 이해를 구했다면, 그리고 그런 설득이 진정성 있게 보였다면 오히려 야당이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걸 해결해 낼 똑똑한 참모가 박근혜정부에는 없었다. 다들 '진박' 타령이나 하고 대통령 눈에 들기 바쁘면서도 정말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정을 쏟으려 하는 자는 없었다.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그걸 혁파(革罷)할 용기를 가진 자는 없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계획을 짜고 그걸 국민 앞에 내놓고 설득할 배짱은커녕 그런 지식조차 없는 자들만 있었다. 그러니 말만 개혁이고 말만 탈규제였으며 말만 민생경제였다. 그 결과 문민정부 이래 보였던 병폐들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단언한다. 이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안 돼 내가 환관이라고 불렀던 자들, 대통령에게 아첨이나 하고 단 한 번도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하지 못한 속 빈 강정들, 그들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들었다.
이 판에 여당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다. 소수 여당을 만만히 본 정세균 국회의장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게다가 정 의장이 속셈을 드러낸 '맨입' 발언이 빌미가 됐다. 그런데 그 사태를 부른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이 무슨 대수인가? 어차피 대통령은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다면서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에는 온갖 소문이 떠돈다. 국정감사를 파토 내서 미르니 K스포츠니 하는 재단에 얽힌 여러 의혹들이나 대통령이 끝까지 지켜주는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추궁을 피하려는 잔꾀라는 의심도 그중 하나다. 정말이지 이래서는 대중은 점점 멀어진다. 대통령의 실패, 정부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다. 그걸 기다리는 국민은 한 명도 없다. 세상은 보기보다 대통령의 후원자로 넘쳐난다. 대통령은 왜 이 이치를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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