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러빙 유
그녀가 반복적으로 듣는 노래는 단 한 곡뿐이었다. 그게 무슨 노래냐고 우리 중에 하나가 묻자 여자가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친 채 탁자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스콜피온스. 그게 제목이요? 우리 중에 하나가 되묻자 그녀는 다시 덧붙였다. 스틸 러빙 유. 고개를 숙인 채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때부터 여자는 계속해서 그 말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스틸 러빙 유, 스틸 러빙 유…….(박상우, 부분)
그녀가 듣는 노래는 한 곡뿐이었어. 스틸 러빙 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스콜피온스가 발악을 하고 있었고 그녀가 발악을 하고 있었어. 민족해방, 독재타도의 목소리가 이미 개그맨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세상, 대서사가 사라진 시대에 남은 건 개별적인 외로움뿐이었어. 결국 그녀의 발악은 그 시대의 본질에 대한 몸부림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사랑했던 그 사람과의 추억에 있었어. 이미 그녀는 여기에 살고 있지 않았던 거야. 과거를 살고 있었던 거야. 과거에 살지 못하면 온전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거야. 그건 서글프도록 고독한 그림이었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어.
하지만 그녀가 듣고 있는 '스틸 러빙 유'에서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고 싶은 그 사람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지나간 시대 그 자체인지도 몰라. 미워하고 후회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은 그 시간. 사람과 시간과 공간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저장되면 아름다움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본질 아니던가? 과거가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랑이란 것도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사랑이 어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공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파도가 간지럽게 속삭이고, 서편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지고. 그것이 모두 사랑이 아니던가? 살아가는 존재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는 것이고, 특히 현재 자신의 삶이 어둡고 무거울 때 과거의 사랑은 더욱 강한 힘으로 다가오는 것 아니겠나? 어쩌면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아니겠나? 응답하지 않는 과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지만 그건 이미 우리들에게는 현재와 같은 것 아니겠나? 그래서 지금 그녀는 '스틸 러빙 유'를 반복하고 있는 거야.
은 작가 스스로도 '작가적 삶의 이정표 혹은 나침반 같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야. 지나간 1980년대와 완전히 달라진 1990년대, 사실 그것은 그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야. 2010년대에 나온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8'. 응답을 요구한 그 시대의 호출에 사람들은 열광했어. 하지만 그것뿐이었어. 응답은 슬픈 메아리만 남았어. 응답하더라도 현재는 이미 2016년이니까.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건 이미 우리에겐 잃어버린 서사니까. 그럼에도 왜 그렇게 응답하기를 바란 것일까? 잃어버린 서사지만 내 역사니까. 추억이니까. 여전히 나는 그 시간에 머물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거기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현재가 절박하니까. 스콜피온스가 반복해서 소리쳤어. 'I will be there' 그리고 'still loving you'.(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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