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훈훈한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관광버스 화재 속에 구조 나선 교사

의인상 상금도 사양한 미담에 위안

朴대통령 측근 스캔들에 나라 들썩

친박 정치인은 남 탓하며 자리 지켜

무슨 비선 실세라는 사람들 몇몇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고, 그런 식의 실세가 있게 한 죄 때문에 대통령까지 위기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무언가 막히고 꼬인 느낌이다. 요즈음 벌어진 일들이 그야말로 미증유의 사안이니 놀라고, 화날 만하다. 분노로라도 풀지 않으면 화병이 생길 판이니 어떻게든 풀긴 풀어야 하는 형국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셜리:허드슨강의 기적'은 7년 전 뉴욕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 착륙시켜 탑승자 155명 전원을 살린 셜리라는 조종사 이야기다. 수십 년 경력을 바탕으로 한 노련한 조종 솜씨도 그렇지만 세월호 선장과는 정반대로 침몰하는 비행기 안에 남아 탈출 못 한 승객이 없는지 챙기고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그 기장의 책임 있는 자세에 감동하였다. 셜리는 두말할 나위 없는 영웅인데도 기장이 매뉴얼대로 했는지, 강에 비상 착수한 것이 옳았는지 따지는 항공안전조사위원회의 조사 장면이 처음엔 심히 거슬렸지만 정해진 제도를 통해 위기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는 그런 사회 시스템이 부러웠다. 또 그런 잘 짜인 제도도 중요하나 전문가의 순발력, 즉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도 주고 있다.

또 하나의 영화는 마약 퇴치에 관심이 많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굉장한 대중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조국을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고 무작정 백악관을 찾아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해서 기어이 명예직 연방 마약국 요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지지도가 떨어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대중스타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 풍자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연예인이 사회를 위해 '마약 퇴치 요원'이 되겠다고 집요하게 나서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속칭 공인이라는 엘리트들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20년 전 멕시코 출장 중 타고 가던 택시 기사가 어디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뉴스를 보았는지 "너네 나라 꼬레아는 정의가 살아있다. 우리 직전 대통령은 비행기에 금을 한가득 싣고 미국으로 가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아무 탈도 없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과 측근의 금전 스캔들 때문에 검찰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전 사회가 들썩일 정도의 스캔들에 어떤 형태로든 당연히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당장은 나라가 망할 것 같지만, 겉으론 일사불란하나 속으로 썩어가는 독재 체제보다 우월한 민주주의의 힘이 아닌가? 우리가 마냥 자괴감에 빠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시 영화 속 조종사의 책임감과 연예인의 애국심을 반추해 보자. 영화엔 안 나오지만 조사위원회에서 무혐의 판정까지 받아 진정한 영웅이 되었으면서도 그 기장은 연방 하원의원 제의를 고사했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는 스타인 동시에 명예직이긴 하나 대통령이 부여한 연방 마약국 요원이 되었으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는 실세 노릇을 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그러한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단다. 단순한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상징성만으로도 마약 퇴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사회를 맑게 해주고 마음 훈훈하게 해준 따뜻한 미담의 주인공이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얼마 전 있었던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사고 때 추가 폭발의 위험 속에서도 가던 길 멈추고 부상자들을 구하곤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느 대기업 재단에서 그에게 '의인상 수상자'로서 상금 5천만원을 주려 하자 "슬픔에 빠진 분들이 있는데 의인으로 축하받는 건 옳지 않다"며 그 상을 사양한 어느 교사의 훈훈한 미담이다. 자기를 희생하며 사람을 살린 소방관도 있다. 그렇게나 국가관을 강조하며 '박근혜의 복사판이니 복심'이니 하며 박심을 팔던 그 정치인들과 높은 분들은 다 어디 갔는지?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그 '복사판'을 자칭하던 이들이라도 대신 석고대죄해야 할 일인데 남 탓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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