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멘붕 게임

너무 피곤한 날은 여섯 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조차 힘이 든다. 그럴 때면 '멘붕 게임'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질문 놀이를 하곤 하는데, 방법은 이렇다. 아빠는 편안하게 침대나 소파에 누운 채로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아이에게 던진다. 아이가 답을 하면 거기에 대해 질문을 이어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불은 위험한 거잖아? 위험한 일은 나쁜 거지? 소방관은 불을 끄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나쁜 사람인 거네?" 이런 질문에 대체로 아이는 "불은 위험하니까 불을 끄는 소방관 아저씨는 고마운 거야"라며 좋은 대답을 내놓지만, 목표는 아이의 멘탈을 붕괴시키는 것에 있다 보니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위험한 것을 막기 위해서 위험한 일을 하는 건 괜찮은 거야?" 이런 질문은 사실 수사학적인 궤변에 가까운 것이지만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을 할 때도 있다. "너는 태어났을 때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말도 못했고, 그때는 걷지도 못했어. 그런데 지금은 키도 크고, 말도 잘하고, 잘 뛰잖아? 말 못하고, 걷지도 못했던 그 아이와 너는 지금 다르니까 두 아이는 다른 아이지?" "그때의 아이가 자라서 지금 내가 된 거야"라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다시 물었다. "자라난 것은 달라진 거지? 달라졌으면 똑같은 것은 아니지? 그러면 그때 아이와 지금의 너는 다르지 않을까?" 흥분한 아이를 보며 낄낄대고 있노라면 아이의 엄마는 답도 없는 쓸데없는 질문으로 아이를 헷갈리게 한다고 질타한다. 물론 철학을 공부한 나로서도 이런 질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 대답을 듣고 있으면 가끔 '우아할 정도로' 아름다운 대답이 나와 놀랄 때가 있다. 그건 내 아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가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나는 대답 중 하나는, "아빠, 엄마가 네 아빠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엄마, 아빠의 냄새에서 알 수 있어. 엄마에게는 공주 냄새가, 아빠한테는 왕자 냄새가 나"라는 대답은 지금도 너무 황홀해서 잊을 수가 없다. 내게 발 냄새, 땀 냄새가 아니라 왕자 냄새가 난다니.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알려주듯이 "매우 중요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멘붕 게임의 가장 큰 효용은 세상에는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다는 것, 세상은 모호한 구석이 많고, 누가 답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답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주는 데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대통령이 대통령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요즘 상황을 생각해보면 해볼 만한 멘붕 게임에서 할만한 질문이지 않은가? 아이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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