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다면 기자가 되지 말라." 기자 생활 60년 중 50년을 백악관 출입 기자로 활동하며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10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했던 전설적인 여기자로, 지난 2013년 타계한 헬렌 토머스의 말이다. 이 말 그대로 기자는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다. 독자가 아니라 취재원에게.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려면 취재원을 물어뜯을 수밖에 없다.
토머스의 기자 인생 자체가 사랑받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의 장기는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닉슨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느냐"며 비수를 급소에 꽂아 넣는 듯한 질문으로 닉슨의 속을 후벼 팠다. 아들 부시에게는 더 도발적이었다. "정부가 밝힌 이라크전쟁의 원인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석유인가? 이스라엘인가?"
모욕적이기까지 한 질문으로 인터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의 여기자로, 2006년 타계한 오리아나 팔라치도 이에 못지않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이란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다. 팔라치는 이란 여성이 반드시 걸쳐야 하는 '차도르'에 시비를 걸었다. "이것을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하나요?"라고 빈정대듯 물었던 것이다.
이에 호메이니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다. 이슬람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으면 된다"고 받았다. 팔라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메이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걸쳤던 차도르를 벗어 던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 너절한 중세의 누더기를 당장 벗겠다"는 '싸가지' 없는 말과 함께. 격분한 호메이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자는 예외 없이 이렇게 싸가지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다. 불러준 대로 받아 적는 '필경사'일 뿐이다. 토머스는 기자의 이런 '싸가지 없어야 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한 여기자의 싸가지 없는 질문에 그 여기자를 한동안 째려봤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누군데 감히 이따위 싸가지 없는 질문을!" 기자의 질문이 국민과 독자의 궁금증을 대신하는 것임을 무시하는 싸가지 없음 그 자체였다. 이런 사람이 사정(司正)기관의 중추였다고 하니 탄식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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