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아무나 '선생'(先生)이라 부르지 않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선생'을 "일찍부터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국왕이 자문할 수 있을 만큼 학식을 가진 자 등을 칭하는 용어"라고 정의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선생은 굳이 '-님' 자를 붙이지 않아도 존칭으로 통했다. 문헌기록상 처음 선생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신라시대 '강수 선생'과 '백결 선생'이었다. 강수의 원래 이름은 우두였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뿔이 달린 듯하다 하여 이름 붙었다. 어느 날 무열왕은 당나라 황제가 보낸 편지를 해석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았다. 불려온 우두가 술술 읽어내자 무열왕은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듣고선 '강수 선생'이라 하라 했다. 신라 외교의 백미 역할을 한 명문장가 '강수 선생'의 탄생이다.
일제강점기 신식 교육이 도입된 후 '선생'이라는 말은 흔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먼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더러 선생이라 했다. 중학교 선생, 수학 선생 등이 가장 흔한 예다.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를 때도 썼다.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 역시 선생이라 불렀다.
요즘은 남을 가르치거나 학예가 뛰어나지 않아도, 경험이 많지 않아도 가끔은 선생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를 때도 쓰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을 물어볼 때, '선생, 길 좀 물읍시다'하고 칭할 정도다. 그러니 필부필부가 다 선생님인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검찰이 새삼 '선생님'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순실 씨를 두고 '예, 선생님', '선생님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이 알려지고 나서다. 최 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사들은 이후 '선생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꼬치꼬치 '선생님'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캐고 있다. 서슬 퍼런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 깍듯이 선생님이라 불렀으니 그럴만하다.
물론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최 씨를 두고 주변에 '최 선생님'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최 선생님에게 컨펌(확인)한 것이냐'고 묻는 문자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52년생으로 만 64세다. 최 씨는 1956년생으로 만 60세다. 대통령이 최 씨보다 4살 위다. 그런 최 씨를 두고 대통령이 선생님이라 불렀다.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최 씨는 대통령에게 선생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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