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통신] 어진 왕과 충신

탄핵 정국에서 다시 세종대왕이 떠오른다.

세종은 한글 창제를 비롯한 숱한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요즘 더욱 절실히 떠오르는 것은 민심과의 소통이다. 신하들은 세종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특히 탐관오리들은 왕 앞에서 벌벌 떨어야만 했다. 학식과 덕망이 높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엄청난 '정보력' 때문이었다. 그 정보력은 '잠행'(潛行)에서 나왔다.

세종은 종종 저잣거리로 잠행을 나갔다. 그 속에서 민초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체험할 수 있었다. 어느 지역은 가뭄으로 기근이 들고, 어느 지역은 전염병이 돌아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어느 지역은 고을 수령의 극심한 횡포로 원성이 자자하다는 등등. 그리고 어느 대감은 엄청난 재물을 바쳐 아들의 벼슬을 샀다는 둥 그야말로 민초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접할 수 있었다. 세종은 잠행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국정 운영의 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궁궐 앞에서 차단된 부정적인 정보가 송두리째 어전회의 등에서 까발려지면서 신하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왕이 알고 있는 범위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신도 나라와 민심을 헤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순신 장군은 왕과 중앙의 핍박에도 백의종군하면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취임 초부터 '불통'(不通)이 문제시됐던 박근혜 대통령은 민심과의 소통 대신 최순실 씨와의 소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 씨가 있었기에 장관이나 참모들의 '대면보고'도, 민초들과의 '소통'도 불필요했던 것일까. 궁궐 속에서 최 씨와 문고리 3인방 외에는 귀를 열지 않은 셈이다. 언론의 추적 보도나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민낯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있다.

청와대 참모나 국무위원들도 이젠 선택의 시점이 됐다. 최 씨의 국정 농단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하고, 몰랐다면 '피의자'인 대통령 앞에서 어떤 처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은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고 실행해야지, '피의자'가 된 대통령을 보호하고 변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 터이다.

매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거나, 촛불을 들지 않더라도 집 안에서 분노를 삭이고 있는 민심이 모두 청와대를 옥죄고 있다. 참모들은 지속적으로 박 대통령을 감싸고 변호할 것인지, 아니면 들불처럼 번지는 민심의 뜻을 받들 것인지, 어떤 길이 바른 공직자나 충신의 길인지 곰곰이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