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떨어지면 '별똥'인 것을

죽은 이는 하루하루 잊혀 가고

작자미상

죽은 이는 하루하루 잊혀 가고 去者日已疎(거자일이소)

산 사람은 하루하루 친해진다네 來者日已親(래자일이친)

어느 날 성문 나가 바라봤더니 出郭門直視(출곽문직시)

올망졸망 크고 작은 무덤뿐일세 但見丘與墳(단견구여분)

오래된 묘 쟁기질에 밭이 되었고 古墓犁爲田(고묘려위전)

소나무 잣나무도 섶이 되었네 松柏摧爲薪(송백최위신)

백양 숲에 슬픈 바람 많이도 불어 白楊多悲風(백양다비풍)

쏴아 쏴아 바람 소리 시름겹구나 蕭蕭愁殺人(소소수쇄인)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건만 思還故里閭(사환고리려)

대체 어찌 가야 할지 모르겠구려 欲歸道無因(욕귀도무인)

이 시는 인생이 정말 무상한 것이라는 뼈저린 인식에서 시상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삶의 끝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들은 결국은 모두 다 무덤 앞에서 끝장이 나고, 일단 무덤에 들어간 사람은 서서히 잊혀 가기 마련이란 것을. 잘 나가던 사람이든 못 나가던 사람이든 죽음 앞에서는 완전 공평하게 된다는 것을.

더구나 무상함은 살아 있는 자에게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자에게도 가차없이 적용되는 것. 사회적 위상과 신분의 차이에 따라 처음에는 무덤의 규모가 크게 달랐겠지만, 결국 이 세상 모든 무덤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쟁기질에 뒤집혀 밭이 된다. 무덤을 보호하던 소나무와 잣나무도 언젠가는 베어져서 섶이 되었다가, 급기야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폭삭 주저앉게 되어 있고. 삶이 무상할 뿐만 아니라 사후(死後)의 세계조차도 무상함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터에, 무덤가 백양나무 가지에서 쏴아~ 쏴아~ 하고 일어나는 바람에 나뭇잎이 흑흑 떨어져 내리니, 허허 그것참. 아 이거야 나 원 젠장!

바야흐로 지금 나라의 운명을 걸고 방방곡곡에서 100만 촛불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터에, 웬 청승맞고 뚱딴지같은 무상타령이냐고? 권력과 그 주변이 무상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부족한 데서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벌어졌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무상에 대한 더 투철한 인식이야말로 합리적이고도 이성적인 판단의 원초적 토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참 용케도 권력을 잡은 자들은 별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지만, 권력이 별이라는 생각 자체가 일시적인 착시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통찰이 더욱더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던 별들도 까딱 잘못하면 갑자기 똥이 되어 하수구에 풍덩 떨어지게 되고, 떨어지고 나면 그 이름조차도 별똥이 되고 만다는 것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심하고도 뚱딴지같은 무상타령을 이렇게 청승맞게 하고 있는 우수수 잎이 지는 가을이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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