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화마를 마주한 상인들은 망연자실했다.
30일 새벽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집에서 뛰쳐나온 상인들은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11년 전 2지구에서 화재를 당한 뒤 4지구로 옮겨와 여성의류 점포를 새로 시작한 유명애(58'사진) 씨는 거대한 불기둥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유 씨는 "서문시장 2지구에서 장사할 때 화재로 6천만원 상당의 재산을 잃었다. 또다시 살아보자고 빌린 대출금이 아직 남았는데 두 번째 겪은 불로 빚더미에 나앉게 생겼다"며 허탈해했다. 그러면서 "전통시장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려졌는데도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0년 전 그 사달을 겪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4지구 바깥에서부터 시작한 불 때문에 건물 전체가 타버리고, 소방대원들은 시장 내부로 진입조차 못해 초기 진압을 10여 분 동안 못 했다고 한다. 대구시도 중구청도 소방본부도 10년 전의 교훈을 모조리 잊은 모양새다"고 비판했다.
유 씨는 1990년대 후반 남편이 직장을 잃자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며 서문시장 인근 대신지하상가에 세를 들어 여성복 매장을 차렸다.
2001년 '더 잘 벌어 보자'는 큰 꿈을 안고서 서문시장 2지구로 옮겼다. 하지만 장사가 되기 시작할 무렵인 2005년 서문시장 2지구 화재 사고가 터졌다. 당시 6천만원에 가까운 재산 피해를 입은 유 씨 손에는 피해 보상금 명목으로 단돈 100만원이 들어왔다.
점포도 판매할 옷도 모두 잃은 유 씨는 3개월간 '서문 2지구 비상대책위원회' 집회에 참가하느라 장사를 멈췄고, 가족들의 생계마저 위협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에서 3천만원을 대출받아 4지구에 세입자로 입주, 새 터전을 마련했다. 지난 10년간 월 200만원 정도씩 팔았지만 손에 남는 돈은 월 100만원이 채 안 됐다.
자식들 교육비가 늘면서 갚아야 할 대출 이자는 월 20만원에서 올해 40만원으로 뛰었다. 그러던 중에 이날 또 한 번 화마가 덮쳤다. 겨우내 팔려고 사둔 겨울 의류 2천만원 상당을 모조리 잃었다.
유 씨는 "이 추위에 상인들을 또다시 길가에 나앉게 하지 말고 장사할 장소와 피해 대책을 당장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4지구 1층에서 33㎡(10평) 규모의 액세서리점을 10년간 운영해 온 진계한(65) 씨는 오전 3시 30분부터 화재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진 씨는 "새벽에 화재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며 "액세서리점이 1층 모퉁이 쪽이라 상점이 타들어가는 걸 직접 지켜봤다. 소방대원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물만 뿌려대니 속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 3층 두 곳에 의류 도매점을 운영하는 김모(50) 씨는 "이제 다 끝났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김 씨는 "이제 곧 겨울 시즌이라 물건을 엄청 해왔는데 4억~5억원이나 되는 물건을 날리면 어떻게 살라는 건지 막막하다"며 "2지구 화재 복구하는 데 10년 걸렸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오는 건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1976년부터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정모(70) 씨는 "겨울 대목을 앞두고 어제 들여온 물건값만 4천만원이다"며 "서문시장은 불이 자주 난다는 소문에 화재보험 가입도 어렵다. 가입하더라도 3천~5천만원이 한도인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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