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소금강'이라 일컫는 대둔산은 전북 완주, 충남 논산, 금산 세 지방자치단체를 경계로 자리 잡고 있다. 산의 동쪽에 있는 배재(梨峙)는 삼국시대부터 호남과 충청 내륙을 잇는 관문으로 기능했다. 5세기 남하정책 시기의 고구려가, 6세기 대외 팽창기의 신라가 이 고개에서 백제군과 맞닥뜨렸고, 임진왜란 때 호남 곡창지대를 넘보던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관군, 의병 협공에 쫓겨난 곳이다. 근현대사 격변의 시기엔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국군과 빨치산이 죽창과 총을 겨눈 혁명과 이념의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적 상흔이 짙게 서린 산의 특성 때문에 가볍게 오르거나 오락으로 접근하기가 송구스러운 산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만큼 역사적 서사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대둔산을 엄홍길 대장과 함께 올랐다.
◆수락리-마천대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아웃도어 브랜드 밀레 주최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행사가 열린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엔 전국에서 40여 대의 관광버스가 몰려들었다. 원정대원만 1천200명, 현지 등산객까지 합치면 약 1천500여 명의 산객들이 행사장을 메웠다.
찬바람에 손을 호호 부는 등산객들을 카우보이모자의 엄홍길 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연단에 올라선 엄 대장은 익살스럽게 '기(氣) 세례' 퍼포먼스를 펼쳤다.
"쫘악! 여러분 제가 얼마 전 남극대륙과 네팔을 잇달아 다녀왔습니다. 대륙과 산맥의 기를 여러분께 듬뿍 나눠 드리겠습니다."
기 세례에 힘을 얻은 원정대는 수락골을 향해 발길을 내디뎠다. 보통의 대둔산 산행은 금강구름다리, 선녀계단이 있는 운주군 쪽을 들머리로 잡는다.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구름다리 등 난코스가 많아 주최 측에서는 수락리-마천대 쪽 코스를 선택했다.
◆6'25전쟁 때 대둔산서 국군'빨치산 400여 회 전투=주차장을 출발한 원정대는 계곡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울창한 이 계곡을 따라 화랑폭포, 비선폭포가 물줄기를 쏟아낸다. 계곡 입구에서 삼각뿔 모양의 호국승전탑이 일행을 막아선다. 대둔산은 6'25전쟁 당시 호남, 충청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공주와 대전을 연결하는 빨치산들의 거점이었다. 국군과 빨치산은 1천555일 동안 400여 회 전투를 치렀다. 이 전투서 3천600여 명의 군경, 빨치산들이 쓰러졌다.
승전탑을 지나 다시 등산로를 잡는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대부분 단풍은 잎을 떨구었고 몇몇 철 늦은 활엽수들이 막바지 가을을 배웅하고 있었다.
화랑폭포를 지나면서 원정대 행렬에 큰 혼선이 생겼다. 갑자기 좁아진 등산로에 1천여 명의 원정대가 몰리면서 곳곳에서 큰 정체가 빚어졌다. 이 지루한 정체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1시간 넘게 계속됐다. 엄 대장은 정체구간 내내 등산객들과 함께 걸으며 방송 인터뷰도 하고 시민들과 사진도 찍으며 정상으로 올랐다.
◆마천대 정상에 서면 마이산'지리산 한눈에=꼬리에 꼬리를 문 지겨운 행렬은 마천대(878m)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이 마천대(摩天臺)는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는 뜻으로 천고사를 창건한 원효대사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맑은 날 정상에 서면 진안 마이산이 조망되고 지리산의 천왕봉 주능선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주위엔 왕관바위를 선두로 장군바위, 칠성봉이 도열해 있고, 오른쪽으로 이름 모를 암봉들 너머 천등산도 희끗희끗 모습을 드러낸다. 운주 쪽에는 대둔산의 명물 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이 원경으로 펼쳐진다.
10년 만에 대둔산을 찾았다는 윤희정(45) 씨는 금강구름다리의 추억을 늘어놓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리 중간에서 밑을 바라보는 순간 오금이 저려 정말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어요. 일행이 부축하고 눈을 꼭 감고서야 겨우 다리를 건넜어요. 눈을 감으나 뜨나 중력은 똑같았을 텐데 그땐 왜 그리 무섭든지…."
◆민초들의 역사적 상흔 말없이 안아준 산=정상에서 엄 대장과 함께 인증샷을 찍고 이제 일행은 군지골, 수락리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하산길 왼쪽으로는 허둥봉, 금오봉이 실루엣을 그리고 산 아래쪽엔 양촌면에서 올라온 금남정맥이 낮게 펼쳐진다.
이 산자락을 따라 민중들의 역사가 펼쳐졌다. 이곳은 옛 백제와 신라가 각축했던 격전장. 수락리의 지명도 계백 장군의 '머리(首)가 떨어진 곳(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금산 쪽의 배티재는 권율 장군이 1천500명의 군사로 2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호국의 현장이고, 한 말 동학농민전쟁 땐 관군에 끝까지 저항하던 농민군 60열사가 산화한 현장이기도 하다.
대둔산은 국가 전란 때마다 계곡을 열어 민초들의 아픔과 상처를 숨겨(遁) 주었으니 민중들의 가슴엔 언제나 '대둔산'(大遁山)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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