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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문학노트]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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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부분)

원래 계획했던 낙서들이 자꾸만 뒤로 밀린다. 읽은 책들의 목록 속에서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불러내고, 공유하고, 추억하고 싶었다. 비록 생채기나 옹이로 자리 잡고 있었을지라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망각의 강을 건너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기억을 불러냈다. 그런데 불러낸 기억은 추억이 아니었다. 현재였다. 그러니 망각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20년, 30년이 지나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1990년 노래와 시가 과거를 추억하는 매개가 아닌 현재를 드러내는 노래로 버젓이 기능하고 있었다. 이젠 멀리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상은 그 자리다. 아니, 그 의미는 더 절실했다. 이제는 최소한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정태춘이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고 하던 그가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도 마라'던 그 광장에는 다시 깃발 군중과 기자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고 했지만 시대는 과거의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 있다. 그것이 늘 답답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그 시간과 함께한 시대도 흘러가야 하는데, 그것이 역사라는 이름인데 아름다운 역사가 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이야기만이 세상을 채웠다. 부끄러움, 허탈감, 배신감, 불안감, 역겨움, 분노, 울분, 슬픔이란 단어들이 뒤엉킨 채 내 머릿속에서 배회했다. 왜 광장에 나왔느냐는 물음에 한 젊은이는 "150만 분의 1이 되고 싶었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150만 명 중의 1등이 되어야 한다는 세상은 광장에서 그렇게 변화하고 있었다. 배려하고, 연대하고, 공감하고, 풍자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만 답답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분노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들이 서로의 마음으로 횡단했다. 190만 명이 남긴 것이 낙엽뿐이라는 아름다운 마음들.

1980, 90년대 음유시인 정태춘이 '92년 장마, 종로에서' 꿈꾸었던 풍경은 2016년 12월에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눈물도, 물대포도 사라진 축제의 현장. 오른쪽과 왼쪽의 날개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통이 생명을 지탱한다는 것, 그 세상의 몸통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풍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 2017년 광장에는 희망을 품은 새들이 깃을 치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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