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재판'이라면 불공정 재판의 대명사다. 아무런 원칙도 일정한 절차도 필요 없다. 사또 마음대로 판단하면 그뿐이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변사또가 대표적이다. 수청을 거절하는 춘향을 잡아와 "네 죄를 네가 알렷다"며 옥에 가둔다. 황당하고 기가 찬 노릇이다.
행정권과 사법권이 분리돼 있지 않던 시절 사또재판의 길은 늘 열려 있었다. 조선시대 각 고을의 소송 처리는 지방관인 사또(수령)가 맡았다. 죄의 유무와 경중을 가리는데 사또의 역할이 절대적인 시절이었다.
하지만 재판이 그리 허술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도 많다. 물론 변사또 같은 인물이 없었겠느냐만 각 고을 수령들이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애쓴 흔적 역시 곳곳에 남아 있다. 경국대전 등 여러 법전에서 소송에 필요한 주요 법규만을 뽑아 분류해놓은 실무용 법률 서적이 여럿 나와 널리 사용된 것이 그 하나다. 수령들이 가장 흔히 사용한 책은 김백간이 편집한 사송유취(詞訟類聚)였다. 사송의 처리에 참고가 되도록 필요한 법령을 편집한 이 책은 수령들의 소송지침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예측되는 소송을 유형별로 나눠 상투적인 판결을 만들어 둘 것을 권장한 목민서도 두루 이용됐다.
국회로부터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가 '사또재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사또재판을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에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탄핵 사유 13가지를 명시했다. 그리고선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면 조속한 인용결정을 내리라고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미 대통령이 저지른 헌법 위반 혐의가 중대하고 명백함이 드러난 만큼' 신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도 대통령 탄핵 소추 사유 선별 심리를 압박하고 있다. 입법부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헌재는 조속히 따르기만 하라는 오만함이 배어난다. 헌재가 '사또재판'을 할 수는 없다고 할만하다.
대통령 탄핵이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탄핵 사유 하나하나를 따져보고 결론을 맺겠다는 헌재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심리 기간은 야당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탄핵과 조기 대선만을 노리고 탄핵 사유로 이것저것 다 끌어다 붙인 야당의 자충수 탓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또재판이 아닌 '명사또재판'을 기대한다. 야당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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