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영주 풍기읍사무소 읍장실. 중년의 남자 2명이 읍장실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장례 비용을 풍기읍에 맡기고 싶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남자들)
"얼마나 하시려고요?"(장기진 읍장)
"장례 치르고 남은 비용 전액입니다. 1천600만원."(남자들)
"예? 아니, 이렇게 많이…." 장기진 읍장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읍면을 거치며 30년 가까이 영주에서 현장 공무원으로 뛰어온 장 읍장은 2천만원에 육박하는 기부금은 처음 구경했다.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거액이었다.
이름을 밝혀달라고 장 읍장이 이들의 소매를 잡아끌었지만 이들은 "이름은 물론, 기부 사실도 알릴 필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름을 밝혀달라는 장 읍장의 채근에 이들은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 여기 왔습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표시입니다"라는 말만 부연한 뒤 사라졌다.
장 읍장은 "그리 잘 차려입지도 않은 중년의 남자 2명이 읍사무소를 찾아와 거액을 내놔 깜짝 놀랐다. 장례식을 치르고 남은 비용이라는 말을 전한 뒤 '가족회의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기로 뜻을 모았다. 좋은 일에 써 달라'고 하더라. 봉투에 든 돈이 1천600만원이나 돼 너무 놀랐다. 읍사무소에 접수된 성금으로는 아마 영주 최고 금액일 것"이라고 했다.
읍사무소는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곳에 수소문해본 결과, 성금을 전달한 중년의 남자 2명이 지난 1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나모(85) 씨 슬하 4남매 중 2명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 4남매는 모두 영주 풍기읍이 고향으로 맏아들을 제외한 3남매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풍기읍사무소는 나 씨가 6'25 참전용사로 국가 유공자인 남편이 안장돼 있는 영천 호국원에 합장된 사실도 알아냈다.
장 읍장은 "요즘 나라가 엉망이라 동짓달 추위가 더 차갑게 느껴지지만 풍기읍사무소를 방문한 분들을 보고 나니 공직자로서 힘이 솟고 세상 사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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