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근무 인연으로 김천서 개원
단순한 증상 넘어 사회 구조에 관심
"장기간 약 복용 환자 꼼꼼하게 점검"
10여년 해외 의료봉사에 열정 쏟아
'더 써드 닥터즈' 에 130여명 모여
"의료봉사 청소년 지원자 돕고 싶어"
노봉근(49) 김천신경정신건강의원 원장의 진료실 벽에는 우간다에서 선물받은 그림 지도가 걸려 있었다. 책장에는 네팔새마을회에서 받은 감사패와 케냐에서 찍은 진료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지난 10여 년간 열정을 쏟아온 해외 의료봉사의 흔적들이다. 노 원장은 해외 의료봉사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직접 만든 자료집을 꺼냈다. 소책자로 제작된 자료집에는 봉사 지역의 지도와 참가자들의 명단, 약품 후원 및 사용 내역, 후원금 지출 내역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위해서죠.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에 누가 가더라도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노 원장은 빠른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오후 진료 시작 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십수 년 동안 환자들을 만났지만 매번 힘들고 안타깝다"고도 했다. "환자들의 병리적인 고통은 덜어줄 수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잖아요. 개인뿐만 아니라 환자가 처한 사회 구조까지 보면 무력감도 느껴요."
◆정신건강의학과는 의학과 사회학의 접점
책꽂이를 가득 채운 의학 서적들 중간을 차지한 '주역(周易) 강의'에 눈길이 갔다. 서양의학과 주역,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는 "주역을 통해 '진퇴'(進退)를 염두에 두게 됐다"고 했다. "'지진퇴존망이불실기정자 기유성인호(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라는 말이 있어요.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을 알고 존재하고 망하는 것을 알며 바름을 잃지 않는다면 성인이라 칭할 만하다는 뜻인데요. 나아가고 물러갈 때가 언제인지 늘 염두에 둡니다."
한의대 진학을 희망했던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 못 이겨 의과대로 진로를 바꿨다. 민주화운동이 절정으로 치닫던 1986년. 첫 학기를 보낸 그는 공부에 열의를 잃었다. 대신 행글라이딩 동아리 1기 회원으로 활동했고, 2년을 유급당했다. 결국 그는 의과대 예과 2학년이던 1990년 학교를 자퇴하고 입대했다. 스물일곱 살에 전역한 그는 사회학과에 진학하려 편입학원을 다니고, 고전아카데미에서 연구생 아르바이트도 했다.
소련과 동유럽 등 공산주의의 몰락을 접하며 사회학도의 꿈을 접은 그는 의과대에 재입학했다. 동기들보다 6년 늦게 학교로 돌아온 셈이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의학과 사회학의 접점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오랜 진화에 걸쳐 DNA에 각인된 인간의 행동 패턴, 그 패턴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사회의 규범과 문화, 법률, 구조 등이 더 궁금했죠." 그가 환자들을 대할 때 단순히 증상만 보지 않고, 이면에 놓인 개인과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이유다.
부산 출신인 그는 김천과 연고가 없었다. 그는 경희대 의과대 협력병원으로 김천신경정신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던 후배들을 서울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봉직의 근무를 수락했다. 그리고 11년간의 봉직의 생활을 끝내고 지난 2014년 개원했다. "환자들은 잠이 안 온다, 머리가 아프다 등 자기 방식대로 증상을 표현해요. 환자들의 표현을 잘 알아듣고 쉽게 설명을 해야 해요. 장기간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약물 교육을 하면서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죠."
◆밥그릇을 키운 뒤 밥알로 돌아갈 것
지난 2006년 "네팔로 의료봉사를 오라"는 친구의 제안은 그가 삶의 행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노 원장은 준비 기간을 거쳐 이듬해 네팔행 비행기를 탔다. 그가 구성한 18명의 의료봉사팀은 네팔의 나모붓다에서 처음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불안정한 네팔 국내 정세 속에 중단됐던 의료봉사는 지난 2011년 케냐에서 재개됐다. 진료실 책상에 놓여 있던 아프리카 의료봉사 팸플릿 한 장 덕분이었다.
그곳에서 노 원장은 현장을 찾은 우간다 출신의 젊은 의사들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2년 내로 우간다에 가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013년 '더 써드 닥터즈'(The Third Doctors)라는 의료봉사단체를 구성, 약속을 지켰다. '더 써드 닥터즈'는 2015년 경북도의사회의 캄보디아 의료지원캠프에 동참했고, 지난해 우간다와 네팔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했다. "해외 의료봉사는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에요. 거리가 멀 뿐이지 옆 동네에 '왕진' 간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 '더 써드 닥터즈'의 회원은 130여 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80여 명은 매달 5천원~10만원의 회비를 낸다. 그는 요즘 이 단체를 정식 법인이나 민간단체로 등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정식 단체로 등록되면 전문 인력을 두고, 저는 초대 이사장만 맡아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물러날 겁니다. 제가 만든 밥그릇의 밥알이 돼야죠."
그의 의료봉사활동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는 우간다에 지원하는 업무용 차량 구입에 1천만원을 보탰다. 이모도 지난해 네팔 의료지원 후원금으로 500만원을 내놨다. 아이의 세상도 넓어졌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인 첫째 딸을 캄보디아와 네팔 의료봉사에 데려갔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가장 나쁜 질문이 "어땠냐"는 거예요. 너는 얼마나 행복하냐는 식으로 교훈을 주려고 해도 안 돼요. 아이들은 그냥 느껴요. 너와 나, 편을 구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세상이 넓어지죠." 그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네팔로 데려갈 계획이다.
그는 "세상이 좀 더 평평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국내에도 빈틈이 많거든요. 어려운 이들은 돕고,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는 청소년'청년들이 해외 의료봉사를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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