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이자 전국구 시장으로도 이름이 높다. 서문시장은 원래 북성로~태평로 사이 미창골목 언저리에 있었는데 1920년대 지금 자리(대신동)로 이전했다. 당시 서문시장 이전 예정지에는 천황당지(天皇堂池)라는 못이 있었다. 못을 매립하는 데 필요한 흙은 인근 달성고분군의 봉토를 깎아서 조달했다. 시장 부지를 조성하겠다며 유적을 깎아 없앤 꼴인데 요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토목사업이다. 삼국시대 달구벌을 호령했던 지배자의 흔적은 그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장터가 귀족 봉분 흙 위에 세워져서인지 서문시장은 정치와 유독 인연이 많다. 선거철 이곳은 대권주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된다. 김영삼(1992년)'김대중(1996년)'이회창(1997' 2002년) 씨가 대선을 앞두고 이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서문시장 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서문시장으로 달려가 기운을 얻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요즘 다시 서문시장에는 대권주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14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이곳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15일에는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가 상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서문시장이 인기 있다 보니 때아닌 쟁탈전도 벌어진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자유한국당)가 18일 서문시장을 찾아 대권 도전을 선언하겠다고 하자,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이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찾은 서문시장에서 홍 지사가 출정식을 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지다. 홍 지사는 "서문시장이 박근혜의 시장이냐? 초'중'고교 다닐 때 서문시장에서 놀았던 내가 인연이 더 많다"며 발끈했다. 김관용 지사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손님들이 서문시장에 와서 싸운다. 어머니가 서문시장에서 팥죽을 끓여 팔았고 시장통 아르바이트로 먹고 자란 내 입장에서는 너무 어이가 없다"며 설전에 가담했다.
어떤 면에서는 유치해 보이는 정치인들의 공방을 보고 있자니 서문시장에 무슨 '정치적 저작권'이라도 있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서문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방과 해프닝을 달성고분군의 주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실까.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