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새 대통령에게

우리 공동체 학교를 다니던 아이 하나가 군대에 갔다 오더니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해서 말렸다. '공무원'은 좀 낡은 말을 쓰자면 '공복'이다. 시골말로 알아듣기 쉽게 풀자면 '동네 머슴'이고, 길게 늘여 설명하자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심부름꾼'이다.

요즘 들어 '공복'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원서를 내는 사람들 가운데는 대학원을 나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면서기'라는 직책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있다면 9급 공무원일 것이다. 나이 든 나 같은 늙은이의 기억으로는 옛날에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면서기 소임'을 너끈히 해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 교육이 충실해서 요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잘 가르쳤기 때문일까? 그건 아닌 듯싶다. 그러면 옛날과는 달리 공공의식이 높아져서 너도나도 머슴살이나 심부름꾼 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갸륵한 뜻을 펼쳐보려는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공무원 시험은 인기를 끄는 시험이고 지원자도 많다. 이 나라에는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있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기관에서 일할 사람들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는 '정치 지도자'도 있다. 그런데 '공복'이 되겠다는 젊은이의 뜻을 꺾으려 들다니. 거들어주고 부추기지는 못할망정 말리기까지 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지고 들 분도 더러 있겠다.

대통령도 '공복'이다. 공복 중의 공복이다. 온 국민의 머슴이고, 가장 큰 심부름꾼이다. 공복은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서 '월급'을 주고 퇴임 후까지 보장한다. 한때 '친기업적인' 대통령들이 있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손해를 보려고 기업 하는 사람은 없다. '공공기업'도 마찬가지다. 공공의 이익에 훨씬 큰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 농민을 먼저 챙기지 않고 '공복'인 대통령이 사익을 앞세우는 기업을 더 두둔한다? 어쩐지 이상하지 않은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은 노동자 농민이 도맡아서 한다. 나라의 가장 큰 공복인 대통령은 이 사람들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우리는 친기업적인 대통령들이 그동안 어떤 잘못을 저질러왔는지 신물이 나도록 겪어보았다. 사익 추구에 앞장선 대기업과 뒷거래를 하다가, 또는 하려다가 손가락질을 받거나 그 혐의로 옥살이를 하는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모습도 눈앞에 보고 있다. 그리고 친기업적인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통령이 이 나라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제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을지도 지켜보고 있다.

'공익'은 '사익'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공익에 봉사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은 사익 추구를 본분으로 삼고 있는 기업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나라가 온전해진다. 대통령도 기업가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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