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국민과 검경 수사권 조정

흥미진진한 싸움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역대 전적 3대 0. 일방적인 승리와 잇따른 패배로 결론났었다. 네 번째 싸움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대역전극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대의 뼈아픈 실책과 자충수가 잇따라서다. 패자는 최고 권력층의 지원에다 우호적인 여론이라는 덤까지 얻은 상황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얘기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일 기세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눈꼴사나운 광경도 펼쳐질 것이다. 앞서 벌어진 3차례의 싸움을 통해 상대 전략과 무기는 이미 드러났다.

첫 싸움은 검찰의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민생치안 관련 일부 범죄에 한해 경찰에 수사권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정부 출범 직후 학계와 정치권에서 논의가 있었지만 법무부 반대로 공론화조차 되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 두 번째 싸움이 벌어졌다. 검찰 개혁 의지가 남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원 속에 2004년 '수사권 조정협의체'와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가 꾸려졌지만 검찰의 기득권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도 준비가 부족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 전후로 세 번째 싸움이 전개됐다. 개정된 형소법은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인정하면서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 역시 규정했다. 경찰은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했고 홍만표 대검찰청 기획조정실장 등 협상팀 간부들도 검사들의 불만을 산 조정안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세 차례의 싸움을 거치면서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선진국의 검경 위상에 대한 사례도 모두 나왔다. 인권 탄압의 대명사로 불렸던 경찰의 흑역사도 드러났고 비대 권력을 가진 검찰의 적나라한 문제점도 공론화됐다.

검찰이 과도한 공권력을 가졌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수사권'영장청구권'기소권'경찰 수사 지휘권 등 수사와 재판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독점한다. 미연방수사국(FBI)과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를 합친 것보다 더 세다는 얘기도 있다. 견제받지 않은 비정상적인 권력이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권한 남용 의혹, 스폰서 검사 등 공분을 산 원인이다. 기자들도 검찰을 상대로 취재가 쉽지 않다. 취재에 필요한 정보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검찰 조직에 필요한 정보만 흘린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수사권을 경찰에 주면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까? 경찰은 과거 지금의 검찰보다 더 악명(?) 높은 집단이었다. 일제시대 순사를 뿌리로 두는 경찰은 서민들에게 인권 탄압의 대명사였다. 한 로스쿨 교수는 "경찰이 과거 저질렀던 각종 인권유린 등에 대한 역사는 숨긴 채 권한만 더 챙기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힘없는 서민들에게 검찰보다 경찰이 더 무서운 집단이다. 검찰은 먼 곳에 있어 접하기 쉽지 않지만 경찰은 서민들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무기로 서민들을 짓누르면 그야말로 호소할 데가 없다. 신문사에 전해오는 억울한 제보들은 검찰보다 대부분 경찰과 관련돼 있다.

네 번째 싸움은 과거와 달리 큰 변수가 있다. 바로 국민이다. 촛불 시위를 통해 정권을 무너뜨린 국민은 어느 때보다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과거처럼 검경 간 밥그릇 싸움이나 그들만의 논쟁으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 예상되는 검경 간 진흙탕 싸움에 적극적인 심판자로 나설 것이다. 무관심과 방심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직전 정권을 통해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 어느 집단이 국민을 더 두려워하는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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