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네야 하나? 뛰어날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아온 너의 이야기가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지난달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너의 스토리가 담긴 이 책을 선물하면서 더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고, 금태섭 국회의원이 300명의 모든 국회의원에게 이 책을 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 더 증폭됐지. 서점가에서는 네 책이 연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니까 책에 쏠린 시선을 한마디로 '김지영 현상'이라고 표현하더라고. 평생 여기저기 치이기만 하고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했는데, 갑작스러운 애정 어린 이목들이 당황스럽고 얼떨떨하지 않아?
나도 네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읽어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실망했어. 소설 속 주인공은 대부분 특별하거나 성공을 했거나 아니면, 인생 스토리가 파란만장해야 하는데,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닌 1982년생인 내 얘기 그대로였거든. 내가 살아온 삶 그 자체. 뭘 더하고 뺄 것도 없이 82년생 전후의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겪어봤을 법한 뻔한 이야기. 소설 속에서 과거 나도 겪었던 위기 상황이 지영이 너에게도 닥쳤을 때, 너라면 당연히 멋지게 시련을 이겨내고 화려하게 부활할 줄 알았어. 하지만 책은 그런 기대조차 허락하지 않더라. 나와 똑같이 좌절하고 우울증을 겪고 또 힘겨이 살아가는 실사판 다큐멘터리더라고.
그런데, 세상 사는 당연한 이야기가 왜 소설이라는 장르로 나와서 왜 주목을 받을까? 난 의아했어. 별 의미 없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최근에야 우연히 책의 서평을 봤어. '82년생 김지영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비문명성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이다.' '여성의 역할과 기여가 정당한 대접과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데 대한 실망과 좌절이 원한과 분노를 넘어 정신병적 증세마저 낳고 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 아! 그동안 이 부당한 사회를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구나, 남녀차별적인 비정상적인 세상에 목소리 한번 못 내고 문제 제기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너의 이야기 속에서 난 그 어떤 문제점도 인지하지 못했구나. 미련하게도 그때야 책을 다시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
취업 준비를 하던 내게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했던 아빠,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라고 "여자는 일보다는 가정이 우선이지"라고 했던 엄마, 최근 직장을 옮겨 회식이 잦아지다 보니 "가정 있는 여자가 빨리 집에 들어와서 애를 봐야지, 나하고 너하고 같냐!"라고 불평하던 남편, 임신 후 배가 불러오자 "뚱뚱해 보인다. 시청자들이 보기 좀 그렇지. 앵커 바꿔"라던 PD, 출산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나에게 "애 낳고 오면 니 자리가 그대로 있을 것 같아?"라며 비웃으며 얘기하던 선배, 회사 복귀를 고민하던 내게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이제 집에서 애나 키워야지"라고 말씀하시던 시어머니까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왜 반박하지 못하고 뒤돌아 내 가슴만 쳤을까.
지영아,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세상이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여. 이번 정부에서 여성 공직자 비율을 선제적으로 늘리기로 했고, 사상 처음으로 국가보훈처장에 여성인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임명됐어. 아직 남자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깨기 어려운 유리천장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하나둘 깨다 보면 분명 우리도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히려 요즘엔 여아 선호 현상이 더 뚜렷하다고 하잖아. 아이 낳고 남아라고 하면 "딸 하나 더 낳아야지~" 한다니까.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야. 그런데 설마, 우리 아이들이 클 때쯤엔 여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 내 아이는 남자인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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