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물쭈물 살다가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진 비문(碑文)이다. 이것은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어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문장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버나드 쇼의 명언 "그대가 할 일은 그대가 찾아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그대를 찾아다닐 것이다." 하나만 떠올려 봐도 묘비에 새겨진 글과 연결고리가 쉽게 닿지 않아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오역(誤譯)의 유혹'이란 제목으로 어느 신문에 기고된 다른 번역이 있었다.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으로 들어가는)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문장이 올바른 직역이었다 하더라도 이것 또한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족한 실력으로 용기를 내어 나 나름대로 이렇게 의역해본다. "나는 알았지, 내가 충분히 오래 살았더라도 이곳에 묻혔을 것을." 버나드 쇼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끝없는 열정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도 웃음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삶에 비추어볼 때, 인생은 조금 덜 살거나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에 더욱 소중한 의미를 두는 것일 테니까!

'버나드 쇼' 이름을 건 생가 옆 식당에서

영어도 짧은 내가 이태리 음식 주문?

내 진작

이럴 줄 알았지

불멸이다,

그 묘비명

(이승은 '더블린 편지-우물쭈물')

누구나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새삼스레 망설이던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특히 낯선 곳에서 이국의 언어로 음식을 주문할 때, 혹은 물건을 살 때, 여러 번 우물쭈물한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시인은 하필 더블린에 있는 '버나드 쇼' 생가 옆 식당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주문하면서 언어 소통에 자신이 없어서 더욱 주뼛주뼛했을 것이다. 삶이란 늘 선택과 결정으로 이어지는 길 한가운데를 관통하지만, 그때마다 우물쭈물 불안해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만만치 않다. 우리가 즐겁고 행복할 때면 삶의 본질을 쉽게 잊어버리게 되지만 마음이 슬프거나 아플 때에 비로소 그 본질과 마주하게 되어 아무리 애써 외면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내 안의 고요한 힘을 믿고 나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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