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털보기자의 이슈 털기]<40>분노조절 장애 앓는 대한민국

#1. 대구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체육시간. 한 여학생이 실수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남학생의 머리에 배구공을 맞혔다. 이 남학생은 곧장 뒤를 돌아 여학생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운동장에 내동댕이 쳤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자신한테 피해가 오면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응징하겠다는 심사 아닌가.

#2.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 대표적인 3D(Difficult, Dangerous, Dirty) 직업인 아파트 외벽 작업자(46세, 다섯아이의 아빠)가 홧김에 저지른 주민의 범죄로 목숨을 잃었다. 조울증을 앓고 있던 이 분노조절 장애 주민은 '작업자들이 틀어놓은 음악이 시끄럽다'며 공업용 칼로 작업자의 생명과 직결된 밧줄을 잘랐다.

#3. 부산의 한 아파트 냉동실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이 범죄의 주인공은 두 아이를 출산한 34세 여성으로 '임신과 출산 사실을 동거남이 알게 되면 버림받을까봐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했다. 첫째 아이는 2014년 9월, 둘째 아이는 지난해 1월에 출산했는데, 갓난 아기를 내버려 숨지게 한 뒤 냉동실에 보관했다.

위 3가지 사건 모두 이번 달에 일어난 일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경산도 방언으로 '얼척이 없다'(어처구니가 없다). 예측가능한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더 문제인 것은 분노조절 장애 범죄로 인해 엉뚱한 사람들이 날벼락을 맞거나, 상식을 벗어나는 황당무계한 일을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매달 수차례씩 핫뉴스가 되고 있는 분노조절 장애로 인한 끔찍한 범죄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불안에 떨게 할 정도다. 묻지마식 살인 또는 폭행 등은 부녀자나 어린 아이들이 맘놓고 등산이나 산책도 할 수 없게 한다. 분노조절 장애로 인한 범죄는 대상자를 가리지 않고, 그 때 감정에 따라 무차별적인 폭행이 자행되기에 더 위험하다.

우리 사회는 남녀 간의 성대결로 인한 범죄도 도를 지나치고 있다. 지역 출신으로 치킨 프랜차이즈('호식이 두마리 치킨')로 큰 성공을 거둔 최호식 회장은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호색이'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성추문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경우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한다. 당사자들의 잘못도 크겠지만, 이를 약점으로 삼아 과도하게 파문을 일으키려는 여성들도 있다. 여성 또는 남성 혐오 범죄 역시 서로 다른 성에 대한 이유없는 분노조절 장애가 숨어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통제하는 못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 국민은 뭔가에 쫓기는 듯 살고 있다. 정치권 뿐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평온함이 지배하고 있다기보다는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분노조절 장애를 앓게 되는 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상대적 불평등(경제적 소득 격차, 교육 불평등 등)도 사회 전반의 불만세력을 양산시키고 있다.

어린 자녀들의 분노조절 장애는 그 누구보다 부모의 탓이 크다. 작은 실수에도 부모들이 과도한 체벌을 하게 되면, 자녀 역시 정서불안과 함께 폭력성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분노조절 장애로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품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불행의 씨앗을 안고 사회에 뛰어들게 된다. 부모 세대들은 자라나는 자녀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참은 인(忍)'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

사회 전반에 용서와 관용, 양보와 배려, 웃음과 여유, 칭찬과 격려가 가득차 있어야 분노조절 장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극단적 이기주의, 막말과 욕설, 비난과 배신,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이래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섰다. 각종 정책이나 제도변화도 중요하지만 위험천만한 사회 분위기부터 바꾸려는 참신한 아이디어(긍정의 마인드를 심는 각종 캠페인 등)로 분노로 가득찬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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