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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TV없는 시절 대구, 인기 쇼로 주름잡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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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이 땅은 정의가 소멸되고 의리는 증발되고 윤리가 타락되어 이목구비가 바른 사람들은 정신착란이 와있다. 비 올 때는 비를 맞는 수밖에 없다. 날 궂은 날에는 쇼나 보며 새날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고관대작들은 그들이 받는 봉급값을 한다고 국민들에게 쇼를 많이 보여주었다. 공중부양 쇼, 쇠망치로 문 부수기 쇼, 연탄 배달하기 쇼, 저질 개그 쇼, 저능아들의 전국 순회 토크쇼, 법원 갈 때 죽어 가는 환자 연기, 대통령의 낯간지러운 썩소 연기, 국회에서 최루탄 터트리기 시범 등등 그들 나름대로는 노력을 많이 했다.

양반은 그런 공짜 공연은 좋아하지 않는다. 제 돈 주고 옳은 쇼를 봐야지 그따위 저질 쇼 보면 눈병이 난다. 대구의 극장들은 쇼를 많이 했다. 텔레비전이 없고 라디오도 시간제로 나오던 시절 대구의 수많은 크고 작은 극장 무대서 온갖 가수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경부선 푸른 다리 옆에 있던 신성극장, 다리 건너 신도극장에서 쇼를 많이 했고 남문시장 부근에 마주 보고 있던 대도극장과 대한극장 또한 쇼를 많이 하는 극장이었다. 변두리의 동부, 사보이, 서부, 수성, 미도, 남도, 시민, 현대 등의 소규모 극장들도 쇼를 많이 했는데 여기는 무대 규모도 작고 급이 낮은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탓에 재미가 적었다. 하지만 입장료가 싸서 서민들이나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멋있는 쇼는 중심지에서 했다. 외화를 주로 상영하던 아카데미나 제일극장은 쇼를 하지 않았고 방화 극장이던 만경관과 대구, 아세아극장에서 자주 쇼를 하였다. 대부분 쇼는 가수들이 노래 부르고 그 사이에 만담을 하는 게 정형이었다. 특이하게 대구극장은 여성국극단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 단연 빛나는 공연단은 임춘앵, 진진 악극단 등이었다. 최고의 쇼 극장이라면 단연코 키네마(키네마-문화-국립-한일)극장이다. '바라야데 쇼'(버라이어티 쇼의 일본어)를 했다. 유명 가수들의 노래, 화려한 의상에 진한 화장품 향기를 뿜으며 추는 무희들의 뇌쇄적인 서양 춤. 그리고 악극단 공연이다. 요새 말로 뮤지컬이라고 하겠는데 가수가 노래도 부르고 연기도 하였다. '울고 넘는 박달재' '전선야곡' '불효자는 웁니다' 등이 최고의 인기 레퍼토리였다. 그중에서도 인구에 회자하는 레퍼토리는 백조 가극단의 전옥이 그녀의 딸 강연실과 함께 공연한 '눈 내리는 밤' '두 남매' '이수일과 심순애'였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일본 소설 '금색야차'를 번안한 '장한몽'을 신파극으로 만든 것인데도 시민들은 정말로 대동강 가에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홀린 배신녀 심순애를 이수일이 발길로 찬 실화인 줄 알고 좋아했다.

뚱뚱이와 홀쭉이, 구봉서와 배삼룡, 송해와 박시명, 서영춘과 백금녀 등의 코미디언과 고복수, 백년설, 현인, 남인수, 고운봉, 백설희, 박난아, 신카나리아, 황해, 박노식 등 대한민국의 유명 가수와 배우들은 문화의 도시 대구의 극장 무대에 한번 서는 것을 그들의 영광으로 삼았다.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그 노래를 또 부르라고 재청을 했는데 남인수는 같은 노래를 일곱 번 부른 경우도 있었다. 남철·남성남, 남보원, 백남봉, 트위스트 킴, 쓰리 보이, 송대관, 박재란, 독고성 등 유랑극장 마지막 세대들이 무대로 들어오던 무렵 쇼는 쇠퇴의 길로 간다. 텔레비전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대구는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전라도 포목 고객들을 서울로 다 빼앗기고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노래 무대마저도 서울로 다 빼앗기고 말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고목에도 꽃이 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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