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추궁 희생양 찾기 될까 우려
청와대에 소방관 처벌 반대 청원
수사에 앞서 원인 규명 복기 필요
구조 실패의 교훈 얻어야 선진국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영화가 있었다.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새 떼에 부딪혀 엔진에 불이 붙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기장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비행기를 허드슨강에 불시착시킨다. 탑승자 155명 전원은 무사히 구조된다. 2009년 1월 15일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기적'이라고, 기장은 '영웅'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언론들도 기장을 영웅으로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후 사태는 이상하게 돌아간다. 정부가 기장을 조사 청문회에 회부한 것이다. 회항하지 않고 강물에 불시착을 선택한 기장의 판단이 승객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영화는 기장 설리가 논리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변호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문제를 제기한 측이 결국 기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현실에서의 사건 역시 그렇게 종결되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승객은 사망하고 자신만 살아남은 사람도 아니다. 영웅 대접은 못할망정 기장을 추궁하는 모습은 화가 나기까지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공항까지 회항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장이 영웅심에 무모한 모험을 했다는 혐의를 두는 건 지나치지 않나. 전원 무사 구조라는 결과보다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된 것은 그런 과정의 효용성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결과가 중요치 않다는 게 아니다. 유사한 상황에서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영화를 통해 관객 모두 이해하게 된다. 미래의 학습 사례로 기록되려면 철저한 조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
'제천 소방관 처벌 반대'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선례는 소방공무원들에게 한 번이라도 대응에 실패하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작두 날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소방공무원들에게 계속 맡기려면 경찰의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 글에는 20일 오전 11시 현재 1만8천686명이 동의하고 있다. 제천 참사에 대한 당국의 대응이 결국 책임 지울 사람 찾기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그들의 우려를 이해한다 해도 일단 수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유족들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소방관들이 2층 여성 사우나로 신속하게 진입해 구조에 나섰거나, 유리창을 깨 유독가스를 외부로 빼냈다면 대형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족들의 아픈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랴. 현장 소방관들이 조금만 다른 판단을 했다면 가족들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 책임자를 처벌한들 신원이 될까. 수사 결과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지게 되지 않을까. 경찰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처벌을 전제로 한다. 판단 착오 등 현장 대응에 일부 잘못이 있었다 해도 직무 유기로 형사처벌은 불가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거와 증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책임 추궁을 위한 수사로 원인 규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조사단의 대응이다. 구조 실패의 원인 규명을 위한 철저한 복기가 필요한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현장 소방관을 처벌해도, 처벌하지 않아도 수사를 통해 그 같은 교훈을 얻을 수는 없다.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영웅적 결과에 대한 복기도 필요하다. 하물며 실패한 사건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성공보다 실패 사례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안전에 관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책임 추궁과 원인 규명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지만 이번 사건도 결국 희생양 찾기 책임 추궁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시 한 번 말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책임 추궁과 원인 규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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