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술 사회는 빈틈없이 연결돼
땜질식 처방으로 대형참사 못 막아
효율화 명분 완충 역할 부분 사라져
전체 시스템 차원 우회로 설치해야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에 대한 합동 위령제가 있던 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또 하나의 큰 화재가 발생했다. 3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화재였지만 다행히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 두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병원에 환자들이 많았고, 발화 지점이 사람들이 붐비는 로비층이라는 점, 그리고 화재 발생 시각이 이른 아침이라는 점과 전기 합선 등이 발화 원인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그럼에도 사상자 수는 극명하게 갈렸다. 그 주된 이유는 세브란스병원 측의 스프링클러·방화문 등 화재 안전시설 완비는 물론 신속한 신고와 적절한 초기 대응, 평소 소방훈련과 매뉴얼에 따른 대처 등 화재 발생에 대응하는 '기본 안전 수칙'의 철저한 이행 때문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의 제반 대응책에도 의정부 아파트, 인천 낚싯배, 제천 목욕탕, 밀양 세종병원 사고 등 지금까지 일어난 수많은 사고들이 천재지변인 경주나 포항의 지진보다 큰 참사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의 근본적 원인인 '시스템'을 고치기보다는 임기응변식의 수습과 관련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인재'라는 이유를 들어 사고를 적당히 마무리 짓는 행태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관련 공직자들은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규정에 명확히 없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의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이헌재 전 부총리의 말을 빌리자면 "무책임 사회가 되면 사전에 준비하다가 잘못되면 책임 소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해당 공무원들은 위기 발생 전까지 손을 놓게 되어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이러한 무책임 사회가 되면 위기가 반복·증폭된다"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또 "지금은 위기 자체가 일상화돼 위기 관리 전략도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책임 사회를 막기 위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투명하게 하고 위급한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자는 무한책임이 아니라 유한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맥락에서 '투명한 책임 시스템'보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시스템 사고'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예일대학교 페로우(C. Perrow) 교수는 현대 사회가 크고 작은 사고들을 피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의 기술 시스템이 매우 복잡(complex)하고 빈틈없이 연결(tightly coupled)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대 기술 사회의 일상적인 사고의 원인은 전체적 맥락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밀양 세종병원 화재 대참사는 스프링클러 미설치, 막힌 대피로, 불법 증축, 피난구조대와 완강기 미비, 자동 화재 속보 설비 부재, 대피 준비와 훈련 미비, 느슨한 점검, 허점투성이의 안전 규정 등 개별 병원의 불법 및 일탈 행위, 건축법의 허점, 국가 안전 관련 시스템 미흡 문제 등이 얽히고설켜서 발생한 '총체적 시스템 에러'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 준 사고다. 따라서 땜질식 처방이나 단편적 조치가 아니라 전체적 맥락을 고려한 종합적인 시스템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달 본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참사들이 바로 압축성장의 부작용, 즉 기본을 무시하는 병폐가 원인이므로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도 기술 사회에선 시스템의 느슨한 부분들이 낱낱이 제거되고 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완충 역할을 할 부분들이 사라진다. 사소한 발단에서 시작한 작은 사고조차 엄청나게 증폭돼 대참사로 이어진다.
특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사회는 고도의 '연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앞으로 일어날 사고는 거의 모든 부분들이 빈틈없이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어느 한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으며 또한 특정 부분만을 분리해서 고칠 수가 없다. 이런 유형의 사고들이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바로 연결성 때문이다. 따라서 시스템 전체의 연결을 느슨하게 만들고, 이른바 여분의 공간이나 우회로를 설치하는 것이 시스템 사고를 막는 해결책이다. 국민이 행복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여분의 공간 설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의 "꽉 채우려 하지 말고 여백을 남겨야 한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라는 법문을 실천할 때다.
이재훈 경북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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