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쿠시마 원전 재앙 인류에게 던진 논란…『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간 나오토 지음/ 김영춘'고종환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져 있는 해저 29㎞ 지점에서 지축이 요동쳤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된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도쿄 및 수도권 일대 건물까지 무너뜨린 지진은 초대형 쓰나미를 만들며 해안도시를 덮쳤다. 지진해일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엄청난 핵 재앙으로 발전했다. 수천, 수만 채의 건물, 교량, 자동차들이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에 세계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7년.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해일 사태는 여전히 공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행정 수반이었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온갖 정부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 시스템을 비판하고 원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다.

◆방사능 공포 vs 효율적인 전기 생산 수단=원전은 접근하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원전은 정말 위험한 걸까. 원자력은 포기해야만 하는 에너지원인가. 이런 점에서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일본 후쿠시마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로 다가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저자는 국가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원자력 안전 신화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등을 서술하며 자신이 상황에 따라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시간 순서대로 밝히고 있다. 사고 수습 과정을 통해 일본의 비상시 대응 메커니즘, 정책 집행, 추진 과정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저자는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의 가설에 근거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반경 170㎞ 이내는 강제 이전 구역으로, 도쿄를 포함한 250㎞ 이내는 희망자 이전 구역으로 정했다. 약 5천만 명의 대피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대기와 바다를 통해 방사능이 뿌려지고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고마쓰 사쿄의 SF소설 '일본 침몰'을 생각하며 '5천만 명의 수십 년에 걸친 피난'을 떠올렸다고 한다.

◆총리 퇴임 후에도 '탈원전' 운동=간 나오토 총리는 퇴진 후에도 탈원전 운동을 이어가며 자연에너지, 대체에너지 등의 실제 적용을 연구해 '원전 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대안까지 제시해 설득력을 높였다. 물론 원자력 마피아들의 교묘하고 집요한 로비를 피해가며 말이다.

또한 대국민 담화뿐 아니라 직접 피해지를 방문해 이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트위터로 소통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또 '원전 제로'가 국민 스스로 선택한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에너지 정책에 반영하고자 싸우고, 결국 법안을 통과시켰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자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 벨기에 등 5개국도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기료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흑자가 31년 만에 적자로 전환(약 26조원)되고, 석탄과 LNG 발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해 엄청난 탄소세 부담(파리기후협정)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일본은 2015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아베 정부는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저자는 이에 따라 각국 피폭 지역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돌아올 경우 닥치게 될 위험도 지적한다.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능 오염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정책 고민하는 한국에도 타산지석=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정률 20%였던 신고리 5, 6호기의 중단 여부에 관해 3개월 동안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원전을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3의 지진은 한반도에서도 규모 7 이상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원전 철폐' 주장이 다시 설득력을 얻으며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원전 정책을 고민하는 우리의 상황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일본 재앙을 다룬 또 다른 책 '도쿄 최후의 날'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후쿠시마 재앙 이후 또 한 번의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향후 50년간 40만 명 이상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암 발병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핵 재앙의 고리를 미래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는 일,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요, 다짐이다. 196쪽, 1만3천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