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각본 없는 드라마가 궁금하다면…『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

조나단 폭스의 '플레이백 시어터' 대본·배우 중심 연극 벗어나 관객과 함께 즉흥적 재창조

역자 정성희(가운데 검은색 줄무늬 옷)박사가 조나단 폭스와 함께 뉴욕에서 진행했던 플레이백 시어터 워크숍.
역자 정성희(가운데 검은색 줄무늬 옷)박사가 조나단 폭스와 함께 뉴욕에서 진행했던 플레이백 시어터 워크숍.
플레이백 시어터 창안자이자 이 책의 원저자인 조나단 폭스(왼쪽)와 역자 정성희 박사.
플레이백 시어터 창안자이자 이 책의 원저자인 조나단 폭스(왼쪽)와 역자 정성희 박사.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조나단 폭스 지음/정성희 옮김/연극과 인간 펴냄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특히 연극계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연극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대안의 하나로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를 주목하는 연극인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연극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플레이백 시어터가 우리 사회의 곪은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플레이백 시어터를 창안하고 보급한 연출가, 조나단 폭스(Jonathan Fox)가 쓴 'Acts of Service'를 번역한 것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극은 사회를 위한 헌신과 기여 행위'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대본 없이 배우와 관객이 주고받는 즉흥 연극

플레이백 시어터는 기존의 대본 중심, 배우 중심의 연극에서 탈피해, 정해진 대본 없이 관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객과 배우가 즉흥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을 말한다. 대본 없는 연극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소 황당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연극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기록문학 이전의 구술 문화에 의존했던 고대 시대 즉, 예술과 힐링 사이의 경계가 없었던 고대의 연극적 환경을 현대에 회복하고자 창안된 새로운 현대 연극의 흐름이다. 사람들이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재연해내고 각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는 플레이백 시어터야말로 고대 연극 방법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를 바탕으로 조나단 폭스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목표는 '개인의 이야기를 공동체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로 풀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정성희 박사는 6년 전 뉴욕에서 이 책의 저자인 조나단 폭스와 함께 플레이백 시어터 제작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경험에 기반하여 힘겨운 현실에서 이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에서 번역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증발된 이야기, 감춰진 이야기 등 되살려

책 1부에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사상적 근원과 논리를 풀어내고 있으며, 2부에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제작에 대한 실제적인 작업 기법을 다루고 있다. 3부에서는 향후 논의되어야 할 플레이백 시어터의 과제를 제언한다. 부록에서는 공연 실황을 수록하고 있다.

책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백 시어터에 대한 이론과 실제의 전반적인 이해에 관한 책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번역서의 제목은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이며, 부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특징을 나타내는 '관객과 만들어가는 대본 없는 연극'이 된다.

'플레이백'(Playback)이라는 의미는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이야기를 재생해서 나누는 과정이 플레이백이 된다. 또 배우의 입장에서는 관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연기해서 되돌려 준다는 의미에서 플레이백이다.

우리 사회에는 외면당한 이야기들, 나눌 곳이 없어 증발된 이야기들,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소외된 이야기들이 있어왔고, 그 소외된 이야기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서툰 언어로나마 진심을 담아 나누고 경청하면서, 우리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고통받고, 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역할은 큰 기대를 모은다.

◇플레이백 시어터의 근원'기법'과제 담아

역자인 정성희 박사는 미국 뉴욕대학교(NYU)에서 교육연극을 전공하고, 경북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연극 연출자의 시각과 함께 교육적 사고와 철학을 갖고서 늘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나가는 작업과 연구를 20년 넘게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유학 시절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에서 이민자 및 소수민족들과 함께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공동체 치유 작업들을 끊임없이 전개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문화, 저소득층, 비행 청소년과 같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연극으로 사회문제를 치유하며 교육하고 있다.

교육연극에 관한 한 역자는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그가 거주하고, 주로 활동하는 대구와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와 계명대 겸임교수이며 한국교총의 교육연극 전국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육연극개발원 대표이기도 하다.

정성희 박사는 '교육연극의 이해'라는 책을 2006년 출간하면서, 국내 최초로 교육연극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한 바 있다. 이 책은 연극학도들의 필독서로서 자리매김하였고, 교육연극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번역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 역시 국내에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론과 실제를 다루는 첫 번역서로서 연극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확인되고 있듯,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있는 국내 연극계와 사회 전반에 이 책이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36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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