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니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인생이 아니다. 심마니 하면 으레 세상과 단절된 채 산속을 방랑하는 고독한 약초꾼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 심마니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욕(無慾)이다. 남의 밭을 탐하지 않고 자연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약초를 필요한 만큼 캐고 캔 도라지는 이웃에 나눠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최근 약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심마니 인구도 늘어 온라인 카페만 3천 개가 넘을 정도다. 대구에 사는 황치구(64) 씨는 심마니 인생 40년째다. 경험이 풍부한 어인마니로 전통 심마니를 고수하고 있다. 심마니는 약초와 인연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산을 오르면 아찔한 바위 절벽을 타기도 한다. 기자는 12일 경남 삼랑진 일대 산을 돌며 황 씨의 생생한 심마니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계곡 따라 2시간 만에 단풍마 발견
일행은 오전 10시쯤 경남 삼랑진 무척산 일대에 도착했다. 무척산 일대는 올망졸망한 산들이 정겨워 보였다. 자동차를 타고 이 산 저 산을 훑어보던 그가 "기자 양반, 저 산에 오르자. 아마 단풍마가 있을 거야"라고 했다. 단풍마는 햇살이 잘 드는 해발 500~600m 개울가에 주로 서식하고 있다. 단풍마 약초명은 천산룡이고 기관지, 천식,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차를 세워두고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계곡은 며칠 전 내린 봄비로 물이 꽤 많이 불어 있었다. 산길 양지바른 곳에는 쑥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 2시간가량 헤매었을까. "저기 단풍마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어디에요?" "저기 덤불 위에 단풍잎 닮은 잎사귀 말이요." 덤불 위에는 누런 잎사귀들이 휘어감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단풍잎과 비슷했다. "기자 양반, 단풍마 잎사귀 눈도장 꽉 찍어노이소." 힘들게 계곡을 올라온 그의 얼굴에 마침내 환한 미소가 피었다. 그는 마른 넝쿨을 유심히 살폈다. 단풍마 줄기를 따라 몇 분 만에 뿌리를 찾았다.
◆뿌리 길이만 2m, 최대 단풍마 만나
그는 곡괭이로 돌을 걷어내고 흙을 팠다. 노란 뿌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곡괭이질 한번에 뿌리가 쑥쑥 올라왔다. 단풍마 뿌리는 모양이 망개 뿌리와 비슷했다. "이정도면 20, 30년생은 됐겠는데." 그는 뿌리 마디를 보면서 생장 연도를 추측했다. 뿌리 한 마디는 한 해 5㎝ 정도 자란다. 그는 10여 뿌리를 캐내고 다시 단풍마를 찾아나섰다.
30여 분이 지났을까. 단풍마 군락지를 발견했다. 얼핏 보아 단풍마는 5, 6곳에 보였다. "이건 굉장히 클 것 같다. 나뭇가지를 휘감은 넝쿨 길이가 30m 쯤 되겠다." 그는 흥분했다. 뿌리와 맞닿은 줄기 굵기가 새끼손가락 만하다. 그는 뿌리의 흙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뿌리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30분간 흙을 파던 그는 땀을 닦고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단풍마와 씨름한 지 1시간쯤 지났다. 대충 뿌리 전체의 윤곽이 드러났다. 뿌리는 땅에 누워 있었다. "우와, 대물이야." 그가 탄성을 질렀다. 그는 뿌리가 손상되지 않게 흙을 살살 걷어냈다. 문화재를 발굴하듯 조심스럽다. 마침내 뿌리가 땅 위로 올라왔다. 뿌리 길이만 2m가 넘고 굵기는 팔뚝 만하다. 그는 "50년생은 될 것 같다. 생애 최고 큰 단풍마를 캤다"며 벙글벙글 웃었다.
◆아찔한 바위 절벽 타며 도라지 캐기
그는 이번엔 산을 옮겨 산도라지 캐기에 나섰다. 차로 이동 중 바위 절벽이 군데군데 있는 산을 보고는 올라가보자고 했다. 절벽에 있는 도라지는 물빠짐이 좋아 큰 놈이 있을 수 있단다. 큰 놈은 200년, 300년 묵은 것도 있다.
길도 없는 산을 한참 올라 절벽 가까이 도착했다. 그는 매의 눈으로 절벽 구석구석을 살폈다. "여기는 안 보이는데." 그는 다른 절벽을 찾았다. 산은 가팔랐다. 나무 가시가 옷을 파고 들었다. 그는 또 다른 바위 절벽에 다다랐다. 갑자기 그의 눈이 둥그레졌다. "저기 도라지 줄기가 보인다." 절벽 중간에 흙이 쌓인 부분에 마른 도라지 줄기가 있다. 그는 절벽 위쪽으로 올라갔다. 바위 절벽은 거의 수직에 가깝고 절벽 길이는 족히 40m가 넘는다.
"생명줄이니 단디 묶어야겠제." 그는 허벅지만 한 소나무에 밧줄을 묶었다. 자신의 몸에도 밧줄을 묶고는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밧줄을 살살 풀면서 내려가는 모습이 위태롭다. "안 무서워요?" "이정도는 끄떡없지." 절벽 중간에 도착한 그는 곡괭이로 돌을 걷어냈다. "도라지가 너무 작아." 그는 다시 절벽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밧줄을 당기는 힘은 20대 젊은이 같다.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그는 "오늘은 늦었으니 하산하자"고 했다.
◆잊지 못할 짜릿한 심마니의 모험담들
그는 약초 인생 40년 동안 잊지 못할 모험담을 들려주었다. 작년 11월 친구와 함께 청송 주왕산 인근 산에 갔다. 3시간을 걸어 들어가 절벽 바로 옆에서 줄기가 2m 넘는 도라지를 발견했다. 그는 도라지를 캐기 전에 큰절을 두 번 했다. 바위 2개를 걷어내며 2시간에 걸쳐 도라지를 캤다. 도라지 뿌리가 1m 넘는 대물이었다. 200년생은 되는 도라지였다. 그날 따라 그곳에 가고 싶었는데 행운을 잡았다고 한다.
그는 작년 10월 동서와 함께 같은 지역에 갔다. 하루 종일 헤맸다. 잠시 쉬면서 과일을 먹다 작은 산삼 촉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 안쪽을 살피며 100m쯤 걸어 들어갔다. 산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산삼대는 큰 것이 1m쯤 된다. 뿌리가 30㎝ 넘는 100년생 산삼 4뿌리만 캤다. 산삼은 희귀한 쌍뇌두를 가졌다.
또 8년 전 단양 구담봉 줄기를 탔다. 밧줄을 타고 바위 절벽 40m를 내려갔다. 돌 사이에 도라지를 발견했다. 뿌리를 캐보니 250년생쯤 됐다. 뇌두가 무려 4개 달려 있었다. 10년 전 의성 빙계계곡에 갔다. 암벽에서 300년생이 넘은 도라지를 캤다. 약초 인생 중 가장 묵은 도라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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