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홍도 피는 날

새봄의 흙냄새를 맡는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새 잎이 난다. 대문 앞에 늦은 홍도화가 활짝 펴 온종일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홍도화는 장미보다 붉고 꽃송이가 겹겹이 둘러싸여 만첩홍도화라고 한다. 꽃만 피는 꽃 복숭아이다.

봄비 오는 날 스승을 찾아갔다. 매순간 스승에게 배우는 일은 여러 해를 지난 지금도 똑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빵을 굽듯이 불길에 잘 구워지고 속까지 잘 익어서 거죽까지 까맣게 그을리면 영혼도 골고루 숙성되어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 그분이 보내준 따뜻함과 아름다운 신뢰를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온전하게 다 배울 수 있을까?

주변에 깨달음과 참 나를 찾는 프로그램과 속성반이 유행처럼 넘쳐나고, 수십 년씩 한 스승을 뫼시고 밥 짓고 공양하는 수행이 사라져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음에 이뤄질 수 없음을 몰랐던 것이다. 매 순간, 그분에게 주어진 일, 그것을 지켜보며 모든 일을 감내하며 수행의 지남으로 삼았었다.

그런 스님의 살아있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출가 이후 60년 동안 수행과 방편을 함께하셨다. 성파 스님은 단절된 불교문화 복원이라는 서원을 세우고 문화 전도와 정진에 힘을 쏟고 계신다.

서운암에 주석하시면서 4만 평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4월이 되면 5천 평 들꽃 가득한 정토세계를 만드셨다. 우리 들꽃의 소중함과 꽃 공양이 으뜸이라며 야생화를 심어서 종교화합의 축제를 해마다 열었다. 불모지의 서운암에 가마를 짓고 흙을 구워서 도자불상 3천불을 조성하고 1991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고려대장경의 정신을 잇는 16만도자대장경을 봉안하셨다. 더구나 대장경을 봉안할 판전과 3천불전을 마무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과정이 28년 세월이 지났다. 산중 생활에도 시조를 짓고 시조문학에도 지원해 성파시조문학상을 34년째 진행하며 전국 시조백일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행자로서의 이런 일탈은 수행과 일상이 같아야 하며 일상이 생활로 정착돼 세상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사찰의 너른 공간은 무한대의 학습장임을 증명하며 여기에서 우리가 바라는 생산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스님은 사라졌던 염색문화를 위해 전통 쪽을 심고 염색한 감지와 색지, 그리고 들기름을 바른 유지를 되살렸다. 식물의 꽃과 잎, 뿌리와 열매에서 초목염재를 개발해 천연염색의 길을 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스님의 손길이 가면 예술이 되고 수행이 돼 일상으로 연결되었다. 게으를 수 없었다. 닥나무를 심어 직접 한지를 제작하고 감지에 사경과 불화를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1천 년의 보전을 위해 옻칠을 올렸다.

해와 달은 쉬지 않는다. 수행과 방편도 둘이 아니다.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통문화에 천착한 스님은 감지은니사경, 서예, 도자, 산수화, 제지술, 천연염색, 옻칠화 등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작업을 이룩하셨다. 지금도 스님의 원동력은 마르지 않고 진행 중이다. 79세의 노인이 아니다.

2017년에는 흙과 종이로 단절되었던 북위 시대의 불상을 건칠로 조성해 신기원을 만드니 그 열정과 수행은 신라의 양지 법사가 살아온 듯하다고 하셨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스님과 나눈 대화보다도 그분이 길을 만들며 이루어가는 작업량과 결과의 수준이 오랜 시간 위에 역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분 곁에서 누리고 배우며 지켜보는 순간들은 자급자족하며 손수 솔선하며 배웠던 기억들이다.

나는 봄에 세 번이나 스승을 만났다. 그때마다 내가 그분 옆에 있는 시간은 고작 한나절이었다.

그분은 최근 산중의 최고 어른인 방장으로 취임하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익어가고 많은 세월이 어떤 불길 하나가 내 곁에서 활활 타고 있음을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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