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간다. 대상은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이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기대하는 분위기 속에 우려도 교차한다. 자칫 제조업 인력 수급난과 근로자 급여 감소 등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직격탄
300명 이상의 근로자가 근무하는 대구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A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직격탄을 맞는다. 현재 2교대로 일하는 공장 근로자는 200여 명, 전체 인원의 60%가 근로시간 단축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8시간(점심시간 제외) 일한다. 이 중 상당수가 저녁을 먹은 뒤 오후 9시까지 잔업을 자원하고 있다. 공장 근로자 대부분은 토요일에도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일주일 내내 잔업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면 주 57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A사는 오랜 고민 끝에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기보다는 일감이 몰리는 시기에 한해 용역업체와 계약해 인원을 확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손이 부족한 성수기는 연중 2, 3개월에 불과한데 이를 위해 정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A사 관계자는 "매일 잔업을 하는 기간은 1년 중 절반도 안 된다. 아직 검토 단계지만 새로 직원을 뽑는 것보다는 용역을 쓰는 것이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며 "평소에는 기존 2교대 체제에서 잔업을 없애고 3교대로 전환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력이 필요한 시기에만 용역업체와 계약해 30~50명의 근로자를 충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의 대안 찾기
지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장을 운영하는 업종 특성상 근무시간이 길고 주말과 휴일에도 일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근무시간 조정과 업무 간소화, 비효율적인 조직문화 개선 등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국내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앞서 대응하고 있다. 오후 5시 정시퇴근을 위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셧다운제'를 실시하고, 사전 임원 결재 없이는 PC 사용과 야근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대구신세계 직원들은 최근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고 있다. 전보다 출근이 30분 늦춰졌고, 퇴근은 2시간 빨라졌다. 퇴근 후 영업을 마감하는 오후 8시까지는 부서마다 1명씩 당직 개념으로 근무하고 있다. 기본급여의 10%에 이르는 연장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해 실질임금을 유지했다.
이마트는 영업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로 더 길어서 근무형태가 다양하다. 사무직의 기본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현장 판매직은 오전 8시~오후 4시와 오후 3~11시로 교대근무를 한다. 절반에 이르는 계산대 직원의 근무시간은 더 복잡하다. 매장별로 파트장이 시간과 요일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다른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현재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한 백화점은 근무시간을 당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부서 직원이 돌아가면서 퇴근과 영업 마감 시간 사이를 채우고, 영업담당 등 특수한 부서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거나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것 등도 고려하고 있다.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있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식사나 휴식시간도 함께 줄어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해진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해야 하다 보니 업무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퇴근 이후나 휴일에 매장 내 공용PC를 사용해 일하는 사례도 있다"며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부서원 전체가 참여하는 회의시간이 부족해 업무 공유가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52시간 근로시대 대비해야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구 사업체 중 종사자가 300인 이상인 곳은 모두 122개사로 종사자는 7만8천66명이다. 이 중 일부 특례업종을 제외한 업체들은 올 7월부터 근로시간 감축을 적용받게 된다. 종사자 수로 보면 서비스업과 행정을 제외하고 제조업이 8천919명(20곳)으로 가장 많고, 건설업이 4천991명(12곳), 도'소매업이 1천375명(5곳), 금융'보험업이 1천129명(4곳)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2020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체로 확대될 경우다. 대구의 50인 이상 사업체는 모두 2천139곳이고 26만8천92명이 종사한다. 특히 제조업은 대상 종사자가 5만488명(462곳)으로 늘어난다. 건설업(1만7천878명'147곳)과 운수업(1만7천432명'175곳), 도'소매업(1만397명'101곳) 등도 적지 않은 수가 적용받게 된다.
무엇보다 산업별로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이 제각각이어서 산업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 요구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의 산업별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및 임대업, 숙박'음식점업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업종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월평균 약 21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도'소매업(15.6시간)과 운수업(15.2시간), 제조업(14.9시간) 등도 많은 부족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실시하는데 산업별로 상이한 근로시간 현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정책이 될 수 있다"며 "경직적 노동시장인 우리나라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당장은 노동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없어 추가 고용을 하기보다는 생산량 감소가 나타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단순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유인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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