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섬, 코리아, 쉘부르, 포그니, 아도니스···.
4050세대들에게 귀에 익은 대구의 음악감상실들이다. DJ들이 도끼빗을 뒷주머니에 꽂고 장발을 튕기며 '오늘은 왠지' 하며 느끼한 코멘트를 날리던 바로 그 시절이다.
2000년 들어 대구의 마지막 음악감상실 포그니가 간판을 내렸다. 댄스곡들과 신디사이저 같은 기계음이 포크음악을 제치고 무대와 채널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대구시 대봉동 김광석거리에 음악감상실이 하나 생겼다. 왕년의 다운타운가 인기 DJ 도길영씨(예명 한길영)가 문을 연 '길영LP카페'다. 음악감상실의 상징인 뮤직박스를 그대로 재현했고 82㎡(25평) 공간엔 LP가 빽빽이 꽂혀있다.
취재 중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요청하자 길영 씨가 뮤직박스 안에서 노래 한곡을 멋지게 틀어주었다. 카트릿지가 LP판 위에 올려지자 '지지직~' 거친 마찰음과 함께 김광석의 아르페지오 기타 선율이 홀 안에 울려퍼졌다.
"LP음악이 MP3나 CD음 보다는 자연음, 라이브에 가깝습니다. 음성 신호가 순간순간 증폭을 하기 때문에 소리 왜곡이 훨씬 덜해서입니다" 길영씨는 미국산 매킨토시 오디오를 쓴다. MC7300 C40시스템이다. 정통 아날로그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꽤 큰 돈을 투자했다.
도길영씨가 DJ계에 입문한 것은 1981년 포정동의 목마다방이었다. 오디션 때 그의 중저음에 반한 사장은 '합격통보' 대신 내일부터 당장 나오라며 '출근 통보'를 했다.

그는 김종철, 김병규, 한인규를 잇는 2세대 DJ로 분류된다. 바쁠땐 시내 다운타운과 대학가 5~6군데를 뛰어다닐 정도로 바빴다. 당시 DJ들의 인기는 지금 왠만한 연예인을 능가했다. DJ들의 인기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카운터에 답지하는 선물로 가늠한다. "초보 DJ들 한테는 커피와 개피 댐배가 뮤직박스로 들어와요. 중급즘 되면 지갑, 벨트, 속옷꾸러미가 배달되죠. 특급 DJ가 되면 선물 퀄리티가 명품급으로 달라집니다. 심야에 여성들에게 납치(?)되는 경우도 있었죠"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까지 맹위를 떨치던 음악감상실은 2000년대 들어 모두 문을 닫았다. DJ DOC, 쿨, 김현정, 룰라 같은 댄스음악의 습격에 맥도 못추고 무너졌던 것이다.
'이제 우리 시절은 다 갔다'고 시류를 읽은 DJ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역시 뮤직박스에서 나와 레코드가게, 소극장, 정유업계를 전전했다. 세월이 흘러 김광석거리가 생기고 포크가 다시 기지개를 켜자 그도 대봉동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길영LP카페의 가장 큰 자산은 4천500여장에 이르는 LP. 양만 많은 게 아니라 국내, 해외 희귀본도 상당하다. 김민기의 '친구' '김광석 1, 2, 3, 4집'도 소장하고 있다.
"매일 밤 8시 30분 길영LP카페에서는 '추억하나 사랑하나'가 진행됩니다. 커피 한 모금, 낭만 한 스푼에 음악이 그리워지면 카페로 오십시오. 저 DJ길영이 여러분의 감성을 팍팍 충전해드리겠습니다. 뮤직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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