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정점식 화백 유품 유출 사건'은 지역 문화계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2009년 정 화백이 타계하면서 유족들이 수천 점의 소장 자료 사용처를 놓고 고민할 때 대구시와 관계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두 트럭분의 자료들은 고물상으로, 헌 책방으로 팔려나갔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지역 문화계는 근대 문화유산 자료 정리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고 대구시도 2010년부터 대구시 근현대문화 자료 아카이브 구축을 추진했다.
♦'아카이브 미디어 테크' 1년 만에 폐지
대구시는 2013년 대구예술발전소에 '아카이브 미디어 테크'라는 전담기관을 설치하고 '근대문화유산 정보화 허브'로 만들겠다며 정보화 작업에 나섰다. 외부 용역을 통해 9천여 점의 기록물을 수집했고 이중 1천여 점은 디지털화해 검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거창한 구호로 출발한 아카이브 사업은 그러나 흐지부지되었다. 어떤 기준으로 자료를 모으고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계 관계자는 "대구시가 거창한 목표와 달리 직원을 단 한 명만 배치해 의지가 의심스러웠다"며 "당시 작업이란 것도 단체나 기관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하는 단순작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내부에서도 이런 단순 작업으로는 아카이브의 취지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결국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대구시의 아카이브의 근본 취지에 대한 이해 부족과 단견(短見) 행정이 부른 실패였다.
♦'마스터 플랜' 없어 수년째 제자리
대구예술발전소 아카이브 작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대구시는 이번엔 지역 각 문화기관, 단체별로 아카이브 구축에 나섰다. 근대 자료 수집과 체계화 작업이 워낙 방대해 대구시가 직영이나 독립기구 설치 대신 문화 기관들이 자체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은 기관, 단체별로 자료를 수집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구음악협회, 대구미술관, 대구연극협회, 대구문인협회 등이 아카이브 구축에 나섰다. 각 기관, 단체는 대구시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도서, 음반, 팜플렛, 악기, 미술품 등 유작들과 자료를 모으고 원로작가들의 생애사, 구술(口述)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 문화 기관 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 구축 작업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대구시가 기준이나 원칙, 정책적 접근 없이 10년 가까이 예산만 내려 보내고 모든 방법을 협회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아카이브 구축과 관련해 정책 미비와 현장의 혼선은 전국적인 현상"이라며 "앞으로 우수 사례들을 종합해 우선 정책적 큰 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
여러 부작용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 사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원로음악회 임우상 고문은 "원로음악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면서 유족들이 유작, 유품 처리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며 "근대음악의 기초가 될 이 자료들을 놓쳐 버리면 후에 이 분들의 행적은 공란으로 남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작고하신 이점희 전 영남대 음대 교수의 후손들이 유작, 유품 처리 문제를 의논해 왔다"며 "대구시와 관계기관은 수장고부터 빨리 마련하라"고 질책했다.
30년 발행분 '대구문화(월간 잡지)' 아카이브 구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은 "대구시의 공적자금을 받은 단체나 지휘, 감독하에 있는 문화예술단체들은 그 결과물(텍스트·영상·작품)을 통일된 양식으로 대구시에 제출하게하고 시는 이를 온·오프라인의 일정한 공간에 축적하면 아카이브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문화계 인사는 "아카이브의 취지는 수집, 인수, 목록화를 거쳐 활용 단계까지 가야 하는데 대부분 수집, 인수 목록화 단계에서 그쳐 연구나 전시, 출판, 재창조 같은 활용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오동욱 박사도 "대구시가 근대 자원의 수집과 관리 구축을 위해 통합적인 기록관리시스템을 먼저 구축했어야 했다"며 "카테고리, 세목(細目) 분류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정해줘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스) 아카이브 정책 부재가 부른 '비극'

9월 7일(금)부터 10월 16일(화)까지 2018대구사진비엔날레가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대구시의 아카이브 정책 부재로 빚은 아쉬운 사례가 또 있다.
한국 대표 미디어아트 작가인 박현기(1942~2000)는 한국 비디오아트 1세대 인물로 대구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200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작고 작가 전시를 마치고 유족들은 작품과 자료를 당시 개관 준비 중이던 대구미술관에 보냈다. 그러나 미술관측은 2년 가까이 이를 방치하다 다시 유족에게 돌려보냈다. 여기에는 작가의 서가에 있던 기록, 사진, 서신, 스케치북 등 유품 일체가 포함됐다.
대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작품들이 창고에서 사장(死藏)되는 동안 시도 미술관도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이 유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유족들은 "대구든 서울이든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체계적으로 연구를 할만한 곳을 물색해왔는데 현대미술박물관 측에서 기증 요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박현기 작품을 3차원 스캐닝을 통해 3D영상으로 전환해 '대박 전시'로 기획했다.

대구 사진의 원형으로 평가 받고 있는 사진작가 최계복의 작품이 외지로 유출된 것도 커다란 아쉬움이다. 1930년대 '대구의 최계복, 회령의 정도선'으로 일컫던 최계복은 당시 전국 최고의 사진작가였다. 사진도시 대구를 말할 때에도 그의 작품인 '영선못의 봄'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선못의 봄'도 대구를 떠나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있다.
대구시는 2006년부터 사진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그의 작품을 전시해왔지만 판권을 가지고 있는 유족들과 이른바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데 등한시했다. 처음부터 기증 의사를 갖고 있던 유족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자 '영선못의 봄'을 비롯한 원본사진 81점과 원본필름 169점을 서울에 기증했다. '향토에 작품 한 점만 모셔두고 싶다'고 누군가 한마디만 했어도 상황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대구는 올해 제7회 사진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 전시 구성으로 전 세계 사진인들을 비롯 관람객들을 대구로 초청할 예정이다. 이처럼 화려한 외양 이면에 놓쳐버린 대구 예술의 뿌리들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대구는 박현기, 최계복 작가의 작품을 전시장에 걸기 위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손으로 떠나보낸 향토의 두 작가를 이젠 '손님'으로 맞아야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역 예술사 연구 아카이브 정책의 부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단독] 김민석 子위해 법 발의한 강득구, 金 청문회 간사하려다 불발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李대통령, 취임 후 첫 출국…G7 정상들과 양자회담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