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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현행법 위반에 협력업체에 뒷돈 요구까지

중국 진출 등 특정 사업에서만 입찰기준 변경, "식비·현수막 제작비 대신 내 달라" 요구도

지난 2016년 10월 4일 대구 북구 한국패션센터 앞 특별무대에서
지난 2016년 10월 4일 대구 북구 한국패션센터 앞 특별무대에서 '2016 대구국제패션문화페스티벌' 공모전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매일신문 DB

국·시비 유용과 짜맞추기식 입찰 업체 심사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본지 15일 자 1, 3면, 16일 자 3면 보도·이하 대구패션조합)이 지방계약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대구시 공유자산을 무단 처분하거나 협력업체에게 식사비 대납 등을 요구하는 등 갖가지 비리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19일부터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입찰 심사위원단 구성 위법 소지

대구패션조합이 용역업체 입찰 심사를 위해 구성한 심사위원회(본지 16일 자 3면 보도)는 심사위원 수와 배점 등에서 현행 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계약법 등에 따르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행사·미디어용역 업체를 선정하려면 심사위원장을 포함해 7~10인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리고, 3배 수 이상의 예비 심사위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최저점과 최고점을 제외한 평균 점수로 평가할 때 점수를 공정하게 산출하기 위해서 만든 안전장치다.

대구패션조합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각종 입찰 심사에서 심사위원 3, 4명만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최저, 최고점을 제외하면 심사위원 한두 명의 점수만으로 낙찰 업체가 선정되는 결과를 낳는다.

평가 항목에 따른 배점 한도도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계약법에는 수행경험과 경영상태 등 객관적 평가는 최대 20점, 사업 계획 등 주관적 평가는 최대 60점, 가격 평가는 최대 20점까지 주도록 돼 있다. 필요한 경우에만 각 항목 배점을 최대 10점까지 가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국비 보조금 2억원을 받아 수행한 '중국 내 신시장 개척사업'에서 대구패션조합은 미디어 대행사의 객관적 평가 기준을 규정된 점수 한도보다 20점이나 높은 40점을 배점했다. 조정 상한을 감안하더라도 10점이나 높다.

지난 9월 대구시비로 수행한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 - 정저우 패션위크'의 입찰 심사도 허용기준 이내이긴 하지만 가격점수를 30점으로 높이는 등 유독 중국 진출 때 대폭 조정을 시도했다.

입찰 공고 게시 시간도 규정을 어겼다. 예산 1억~10억원의 사업 입찰 공고는 서류 마감 20일 전까지 내야하고, 긴급 공고나 재공고도 적어도 서류 마감 10일 전까지는 게시해야한다. 그러나 대구패션조합은 지난해 8월 중순 행사 용역 입찰이 유찰되자, 사업 시작일(8월 31일)을 불과 사흘 앞둔 28일까지 재공고를 내고, 서류 제출 마감 시한도 당일로 끝내버렸다.

이에 대해 노동훈 대구패션조합 이사장은 "직원에게 행사 대행업체 입찰 시 가격 기준을 허용 범위인 20점까지 높이도록 허락한 적은 있지만, 미디어 대행업체의 객관적 평가 점수를 조정한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해명했다.

◆시 자산 임의처분, 관리비는 대폭 할인

대구패션조합이 대구시 자산을 임의로 처분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대구패션조합은 최근 한국패션센터 2층에 있던 다중모니터가 낡았다는 이유로 처분하고, 수의계약을 통해 새 제품을 구매했다. 대구패션조합은 올해부터 대구시 소유의 한국패션센터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패션센터는 대구시 소유로, 내부 기자재 역시 대구시의 자산이다. 공유자산관리법에 따르면 수탁업자인 대구패션조합은 소유주체인 대구시의 자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는 "과거 건물 관리주체인 패션산업연구원에서 받은 공유자산 목록에는 다중모니터가 없었다. 시 재산인 줄 몰랐고 너무 낡아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패션산업연구원측은 "다중모니터가 분명히 공유자산 목록에 기재돼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패션센터 입주업체가 내는 관리비를 터무니없이 깎아줬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7월 한국패션센터에 입주한 모델육성업체 M사의 경우 매달 4만2천원의 관리비를 내고 있다. 이 공간은 지난해까지 대구패션조합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당시 조합측은 관리비로 월 10만원을 냈다. 본인들이 냈던 관리비보다 절반 이상 낮은 가격에 세를 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는 "면적에 비례해 감정평가를 거쳐 계산한 결과다. 과거 조합이 관리비만 10만원을 낸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고 주장했다.

◆'협력업체에게 뒷돈 요구' 증언도 나와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이 지난해 몇몇 협력업체에 뒷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패션쇼 전문 대행사 T사 관계자는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이 지난해 몇몇 협력업체에 뒷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패션쇼 전문 대행사 T사 관계자는 "추가비용 협찬 요청을 거절 끝에 수락했더니 올해부터 사업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K씨가 T사 측에 보낸 문자메시지에 "제가 (식사비를 결제해달라고 한)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해달라"며 "음식점이 (오후) 8시 반까지 영업하니 오늘 꼭 정리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T사 제공

대구패션조합이 용역비에 포함되지 않은 부대 비용의 대납을 협력업체측에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대행업체가 부담할 필요가 없는 '귀빈 식사 대접비'나 '현수막 제작비' 등의 결제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패션쇼 대행업체 대표 A씨는 "지난해 8월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로부터 '귀빈들의 점심식사 비용 150만~200만원을 대신 내 달라'는 요청을 수차례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구시의 지원 예산 축소로 가뜩이나 전체 사업비 규모가 줄어든 상황이어서 인건비 등으로 쓸 순수익이 1천만원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사정을 설명했지만 대납 요구는 계속됐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지난해 10월 31일 대구컬렉션 개막식 직후 대구패션조합이 초청 디자이너 등 30여 명에게 대접한 식사비 50만원을 추후 결제했다.

실제로 A씨가 본지에 공개한 메시지에는 '식당에서 오늘 8시 반까지 정리해달라고 한다', '내일 카드 받아서 결제하겠다' 등의 내용이 남아있었다.

다른 협력업체도 비슷한 요청을 받았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20년 넘게 패션쇼 사진을 찍은 한 사진작가는 지난해 대구컬렉션에서 200만원 상당의 현수막 제작비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진작가는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입찰 제안가를 100만원 가량 낮춰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해당 작가는 "요청을 받은 적은 있다"면서도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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