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몰라봐서 미안하다, 대구 달성

농업용수 옥연지가 명품 공원으로 변신
비슬산 명성은 예나 지금이나
사문진나루터, 화원동산 몰라봐서 미안해

'몰라봐서 미안하다. 아니, 너를 잊고 있었다.'

여기가 거기가 맞나. 어린 시절 코흘리개로 기억되던 녀석이었는데 원판도 못 알아볼 정도로 신사가 돼 있더라는, 30년 만에 열린 동창회 이야기에 비유하면 알맞다.

추억회로를 잠시 돌려 보자. 1980년대 달성군은 추가요금을 내고 버스에서 내려야 했던 시외지역이었다. 하긴 그 시절 아양교, 팔달교가 대구직할시의 경계로 인식되던 때였으니 화원유원지나 냉천자연랜드는 그보다 더 먼 곳이었다.

달성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1995년 직후에도 문양으로 가던 매운탕 잔치나 비슬산 등산은 대구지하철이 없던 시절 큰 마음먹고 나서야 했던 나들이 코스였다. 그렇게 큰 마음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기억에 저장돼 있던 달성군이 가볍게 나서는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비슬산

비슬산 칼바위에서 바라본 대견사의 모습. 대견사 뒤쪽으로 대구를 둘러싼 산들이 우람한 맥을 뽐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비슬산 칼바위에서 바라본 대견사의 모습. 대견사 뒤쪽으로 대구를 둘러싼 산들이 우람한 맥을 뽐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등산을 즐기지 않더라도 대구 출신이라면 비슬산은 제법 익숙한 곳이다. 낙동강, 금호강이 대구시내 초중고교 교가 가사에 단골로 모셔지듯 비슬산은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시내 교가의 양대 산맥이다.

교가란 자고로 조회시간에, 동문회 술자리를 파할 때나 부르라고 만들어놓은 게 아니지만 외우고 싶지 않아도 부지불식간에 덕지덕지 뇌 속에 자리 잡아 군대 기상나팔 못지않게 반사 신경을 자극한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올라봤을 비슬산이다. 1980년대 32번 버스, 2000년대 836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용연사까지 가서 올라야 했던 비슬산. 등산마니아들의 미션 완성 코스로 공공연하게 인정받아버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도 들어가 있어 전국구 명산 리스트에 오른 지 오래다.

겨울 비슬산은 '목욕탕에서 만난 친구'였다. 참꽃으로 치렁치렁한 모습이 비슬산의 일상복처럼 각인돼 있던 터였다. 참꽃 없는 비슬산은 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불끈 힘을 준 비슬산의 야성미다.

대견사 앞 삼층석탑 앞에서 등산객 한 명이 기도를 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견사 앞 삼층석탑 앞에서 등산객 한 명이 기도를 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이렇게 바위가 많은 산이었나. 바위들이 흘러내릴 듯 산골짜기에 붙었다. 꽃잎이 지고 나뭇잎이 없고서야 알아챈다. 더 멀리 눈길을 던진다. 현기증인가 싶을 만큼 대구를 둘러싼 대덕산, 청룡산, 와룡산, 팔공산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저 멀리 있는 줄 알았건만 손에 잡힐 듯 가야산도 가깝다. 겨울바람이 선물해준 확 트인 시야다. 미세먼지 없는 겨울 산의 묘미다.

무릎 사정이 좋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등산이 힘든 이들을 위해 대견사까지 운행하는 전기차가 있다. 단, 대견사의 은빛 바위 무더기를 오래 보고 싶다면 등산을 권한다. 등산으로 데운 몸이어야 한다. 대견봉의 겨울바람과, 천왕봉의 칼바람에 맞서 견딜 수 있다.

◆사문진나루터

사문진나루터의 상징 중 하나인 피아노 모양의 무대 뒤로 사문진나루터와 달성습지를 오가는 유람선이 낙동강 물살을 가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겨울 강바람쯤이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시민들이 사문진나루터에서 달성습지 생태학습관까지 이어진 생태탐방로 데크길을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서쪽으로 저물어 가는 해를 넋 놓고 바라본다. 한 차례 사색에서 깨어나면 남북으로 비스듬히 놓인 사문진교의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물자를 실어 바삐 오가는 자동차 행렬이다. 옮겨 실어 나르는 건 사문진의 숙명이었으리라. 강물을 사이에 둔 땅의 역사다.

'사문진의 지명 유래는 화원읍 본리리(인흥마을)에 있던 인흥사라는 사찰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문진(寺門津)으로 불렸다는 설, 낙동강가의 모래가 있어 사문진(沙門津)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조선 세종부터 성종까지 대일 무역 중심지였다. 일본 물품 보관창고인 왜물고가 있었으며... 1900년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피아노를 한국 최초로 이곳을 통해 대구로 가져왔으며...'

이런 설명이 친절하게 사문진나루터 안내판에 적혀 있다. 영어 설명만 고쳐주면 완벽할 것 같다. 'Sa(沙) meaning send'가 자꾸 눈에 걸린다. 어쨌든 사문진이 뭔가를 끊임없이 쌓아두고 날랐던 물류의 중심지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생태탐방로 데크길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 유람선.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사문진나루터의 상징 중 하나인 피아노 모양의 무대 뒤로 사문진나루터와 달성습지를 오가는 유람선이 낙동강 물살을 가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이곳에 왔다면 겨울 강바람이 훼방을 놓긴 하지만 꼭 생태탐방로 데크길을 걸어보자. 생태탐방로는 달성습지 근처까지 이어지는데 낙동강을 가르며 나 있는 데크길이다. 대부분 내년 2월 문을 열 생태학습관까지 다녀들 온다. 1km 남짓 거리다. 여유있게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왕복 40분이다.

겨울 철새인 오리떼가 오리배처럼, 한가로운 일상의 대명사처럼 유유자적 떠다닌다. 잊을 만하면 유람선도 떠간다. 해질녘에 와서 운이 좋다면 낙조의 햇살가루가 낙동강에 뿌려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디선가부터 동행하고 있는 축사 분뇨 냄새가 유일한 훼방꾼이었다.

사문진나루터 초입에 있는 수령 500년 팽나무. 팽나무 둘레 새끼줄에 시민들이 소원을 비는 종이를 꼬아 달아뒀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생태탐방로 데크길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 유람선.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사문진나루터 주변만 돌아보고 간다면 동시상영관에 들어가서 영화 시작 전 광고만 보고 나오는 격이다. 사문진나루터의 절경은 화원동산에 있다. 피아노 계단 꾹꾹 밟아가며 오른 화원동산에선 달성습지가 크게 열리는데 이게 장관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보일 만한 지형도 있으니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면서 만들어낸 거대 모래톱에 굳이 스토리 만들어주신 정성에 탄복했으나 아메리카 대륙을 닮았다고 하기엔 페루와 칠레가 섭섭해할 모양새다.

걷기 불편하다면 오리전기차가 모셔다 드린다. 그래도 걷는 만큼 보인다는 건 말하나 마나다. 무엇보다 낙엽을 밟으며 걷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드물다.

화원동산에는 미니동물원이 있었고, 우리 안에서 사슴들이 가래 끓는 소리를 질러대며 서열을 정리하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으나 사문진나루터 데크길을 줄곧 쫓아오던 축사 분뇨 냄새와 달랐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었을 거라 짐작되는 화원랜드는 호젓하기까지 했으나 산책로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달성군의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송해공원의 풍차. 야간조명이 겨울 어둠에 활짝 피어난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사문진나루터 초입에 있는 수령 500년 팽나무. 팽나무 둘레 새끼줄에 시민들이 소원을 비는 종이를 꼬아 달아뒀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여기를 왜 몰랐을까'라며, 뜻밖의 발견이라도 한 듯 뿌듯해하며 뒤돌아 나오는데 누군가가 "화원유원지가 이래 많이 바뀌었나"는 외침인지, 탄복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1970, 80년대 대구시내 초등학교 단골 봄소풍 장소였던 화원유원지가 화원나루공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사문진나루터는 화원나루공원의 초입이었다.

◆송해공원

달성군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장기간 입소문을 탔던 곳은 마비정벽화마을이었다. 마을 곳곳을 채운 벽화와 꽃나무 풍경, 청룡산을 배경삼은 마을 풍경은 그림이 됐다. 걸그룹으로 치면 단연코 센터 역할이었다.

'참꽃투어'에 참가한 관광객이 마비정벽화마을 벽화의 난로를 배경으로 손을 쬐듯 손을 내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그런데 최근 들어 오랜 기간 달성군의 관광 효자였던 마비정벽화마을의 센터 자리를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는 곳이 생겼다.

'송해공원'이다. 마비정벽화마을이 인생샷을 위한 곳이라면 송해공원은 인생샷은 물론 운동효과까지 있는 곳이다. 1990년대 중반 매운탕 가게들이 즐비했던 옥연지 인근은 분위기 있는 커피숍과 둘째가라면 콧방귀를 뀔 정도로 잘 정비된 호반 데크길로 바뀌었다.

설마 싶겠지만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의 이름을 딴 게 맞다. 무슨 연고로 송해공원이라 이름 붙였나에 대해 달성군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송해는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할 때 달성군 기세리에서 출생한 석옥이와 결혼했다. 실향민인 송해는 수시로 옥연지를 찾아 실향의 아픔을 달랬다고 한다. 처가인 기세리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 1983년 옥연지가 보이는 산기슭에 본인의 묫자리를 마련했다. 올해 초 작고한 부인의 선영도 여기에 있다. 그는 2011년 명예군민, 2012년 달성군 홍보대사를 맡으며 달성군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달성군의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송해공원의 풍차. 야간조명이 겨울 어둠에 활짝 피어난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송해공원에는 너른 주차장 세 곳이 있다. 그중 제1주차장에서 옥연지 방면으로 나 있는 백세교가 부교처럼 떠 있다. 실제로는 매우 튼튼한 다리지만 물에 빠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옥연지의 수면과 백세교가 거의 맞닿아있다.

백세교도 송해의 이미지를 따온 이름이다. 송해의 복과 장수의 상징성을 담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팬심이라 불려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송해 마케팅이다.

송해공원의 진국은 둘레길이다. 5km 남짓의 한 바퀴를 돌아도 좋지만 3주차장 부근 구름다리에서 1주차장 물레방아까지 이어지는 길을 추천한다. 2km 정도다. 호수를 낀 전국의 데크길과 비교해도 꿀리기는커녕 벤치마킹하러 와야 할 정도로 잘 꾸며놨다.

3주차장 구름다리에서 시작하는 산책로 시작점에는 '송해폭포'가 눈길을 잡는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뭐든 '송해송해'하므로 '송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다소 인공폭포스러운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이게 겨울이면 장관이다. 얼어붙으면서 하얀 빙벽으로 바뀐다.

곧 더 가면 유행처럼 전국 산하를 이어주고 있는 출렁다리가 나온다. 부부 금슬의 상징 연리목이 출렁다리 옆에서 눈길을 잡는다. 이후 평탄한 길을 걸으면 솔잎이 꽃가루처럼 바닥에 뿌려져 있다.

그렇게 사색하듯 한동안 가면 옥연지 일부가 산 쪽으로 쑥 들어간 모양의, 소(沼)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다. 다소 신비로운 느낌인데 마치 청송 주왕산 주산지에 온 듯하다. 반쯤 물에 잠긴 나무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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